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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장구의 힘

by 송기연

리액션이라는 표현이 있다.

리액션이 좋다, 상대의 말에 적절한 리액션을 해야 한다 등을 사용된다. TV 예능프로그램 속에서는 리액션의 유무가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리액션은 조건반사 같은 개념이다. 액션에 대한 반응으로의 리액션. 작용과 반작용처럼 기계적으로 할 수도 있다. 내가 하는 말에 상대가 전혀 반응이 없다면 그만큼 겸연쩍은 상황도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상대가 말을 할 때는 듣는 시늉이라도 한다. 아주 최소한의 리액션이다. 말의 내용에 공감한다면 "맞아, 그래? 정말? 그래서?" 등의 말을 중간중간에 섞어서 나는 이렇게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표현을 한다.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자연스러운 행동이 나온다. 아무런 반응은 반대로, 엄청난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 기본적인 대화는 이런 모습을 갖는다.


대화에 따르는 리액션은 친밀도에 따라 다르다.

개인적 친분 관계의 정도는 대화에 영향을 미친다. 동등한 관계, 지위나 직급의 차이가 있는 관계, 일시적 갑을의 관계, 다양한 이해관계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의 일부라고 부르는 이런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리액션은 관계지향적이 된다. 리액션 역시 관계의 상태나 정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나이, 직급, 직위 등에 따라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주로 리액션의 주체가 된다. 회사나 조직 내에서 회의, 대화 등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사람과 그걸 듣는 사람으로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리액션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상대의 말에 긍정이나 부정의 구분 없이, 대부분 긍정적 리액션을 기대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응이나 박수 같은 행동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야만 하니까, 그런 분위기니까, 내 위치가 그러니까 등의 이유로 마치 조건반사처럼 약간은 과한 리액션이 액션에 반대급부로 나타난다.


우리말에 맞장구라는 표현이 있다.

오늘 오전 운동 후 체육관 동료들과 샤워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광안리에서 갈빗집을 운영하는 동생이었는데, 단체손님에 대한 음료 서비스 문제로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서비스 업종에 있는 오너로서의 어려움을 주된 내용이었는데, 나는 큰 목소리로 호응했다. 샤워가 끝날 때까지 그는 계속 세부적인 어려움과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다. 얘기가 끝난 후 그 동생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형님하고 얘기하면, 제 말을 잘 들어주셔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의외의 말이었다.

나는 절대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그냥 내 기준으로 볼 때, 이 동생의 의견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얘기를 나눈 곳이 샤워장이기에 조금 더 큰 소리로 호응을 했을 뿐이었다. 서로 샤워기를 틀고, 앞을 보면서 얘기를 하면 내용이 100%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큰 맥락 정도만 들리는 수준이다. 그래서, 나의 평소 반응보다는 조금 더 큰 목소리와 동작이 나왔지 싶다. 그런데, 그런 점을 너무 좋게 받아준 것이다.


나는 리액션보다는 맞장구라는 표현이 더 좋다.

맞장구는 '치다'라는 어미와 함께 온다. 이는 풍물놀이를 할 때 둘이 마주 서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치는 장구를 말한다고 한다. 맞장구를 치려면 서로 호흡이 제대로 맞아야 한다. 그래서, 남의 말에 동조하여 같은 말을 하거나 부추기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상대의 말에 기계적인 리액션을 하는 것보다 말의 의미와 내용에 완전히 공감해야 비로소 맞장구가 가능하다. 이른바 진실한 리액션인 셈이다.


무지성적 공감에는 감동이 없다.

반대로 나의 생각이나 의도에 완전히 공감해 주고 반응해 주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다. 가만히 잘 들어주는 것도 아주 좋은 호감을 줄 수 있다. 여기에 조금 더 노력한다면 잘 듣고 있음을 반응으로 보여주고,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 맞장구를 쳐보자. 오늘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호감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작은 맞장구에 큰 만족이 다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작은 원칙은 믿는다.


작은 원칙이 모여서, 좋은 관계를 만드는 맞장구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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