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만 조금 어렵다!
나는 부산사람이다.
그중에서도 남자고 나이는 50대다. 자연스럽게 자라오면서 살갑지 않은 것이 진중하고 남자답다는 사회적 인식이 내면에 깔려 있다. 물론, 지금보다 조금은 부드럽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부모님 세대의 남자어른들은 훨씬 더 무뚝뚝한 말투와 표현이 강했다. 그냥 큰 의식이 없었다.
스몰토크(small talk).
깊이 있는 주제보다는 가벼운 일상적 대화를 의미하는데, 서양문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처음 만나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정보전달보다는 사회적 관계형성을 위한 대화로 인식된다. 언뜻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는커녕 인사도 쉽지 않았다. 매일 마주치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같은 동 얼굴 정도는 아는 입주민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인사정도는 하는 게 어떨까'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굳이 그게 내가 먼저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재작년부터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에 참여하고 있다.
회의 중, 마주치는 아파트 관리직원분들과는 인사를 적극적으로 하자는 안건이 나왔다. 스스로 하면 더 좋았겠지만, 계기가 주어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후, 경비직원분들과는 멀리서 눈을 마주쳐도 내가 먼저 고개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하고 나니 나름 자연스러웠다. 얼마 전에는 같은 입주민 아저씨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내가 조금 먼저 타는 상황이었고, 이 분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오셨는지, 분리수거를 위해 나오셨는지 편한 복장이었다. 솔직히 약간 화가 난 듯한 인상의 중년 아저씨였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먼저 들어가 있고, 그 아저씨는 현관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분은 잠깐 서두를까 하는 듯했고, 내가 먼저 "천천히 오세요"라고 말하고, 열림 버튼을 눌렀다. 이내 그분이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띠며, 조금 빨리 걸어오셨다. 1초 전만 해도 약간 무서운 중년의 아저씨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온화한 인상으로 변했다. 내가 먼저 내리면서, "안녕히 올라가세요"라고 하고, 그분도 "감사합니다, 안녕히 들어가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이럴 수가. 그렇게 많이 어렵지 않았다.
내 최대 스몰토크의 한계는 아직 인사까지다.
스몰인사 정도가 맞을지도 모른다. 인사할까 말까 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어떤 날에는 엘리베이터 안의 어색한 공기가 힘들었다. 동성은 그나마 나은데, 이성과 같이 타게 되면 아직 어렵다. 아, 내가 이런 인사를 먼저 하려고 했던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뉘 집 애들인지는 몰라도, 초등학교 고학년인지 중학생인지 모를 학생 한 명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어른들에게 매번 인사하는 것을 봤다. 나도 그 학생에게 인사의 대상이 되었다. 인사를 받으며 참 기분이 좋았다. 집안교육을 참 잘 시키셨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이 든 어른인 나도 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도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아직 많이 어색하지만, 날씨 정도까지 주제가 확장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먼저 인사하고 가볍게 건넬 수 있는 말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한다. 머릿속으로 가상연습을 해본다.
"안녕하세요"
"천천히 오세요"
"몇 층 가세요"
"오늘 날씨 참 좋네요"
"안녕히 들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