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는 성인이 되어 가장 마지막에 자라는 이다.
기능적으로는 별로 쓸모없고, 오히려 뽑아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자라기 시작하는데, 문화권마다 부르는 용어가 다르다. 영어로는 Wisdom Tooth, 지'혜의 이라는 뜻'으로 지혜가 생기는 나이에 자라는 이라고 하고, 이는 라틴어 Dens Sapientiae, 독일어 Weisheitszahn, 스페인어 Muela del Juicio, 프랑스어 Dent de Sagesse 등 의미는 조금씩 달라도 모두 지혜, 판단, 성숙 등의 의미로 쓰인다. 동양권에서도 일본어 親知らず (Oya shirazu)는 '부모가 모르는 치아'라는 의미로, 자녀가 성인이 되어 부모가 모르는 시기에 나는 치아라고, 중국어 智齿 (Zhìchǐ)는 '지혜의 치아'로 성숙한 나이에 나는 치아를 의미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을 알 나이에 나는 치아'라는 뜻으로 '사랑니'라고 부른다.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대부분 이름이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름을 가지면서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어떤 보편적인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그때부터 그 대상은 더 이상 보편적일 수 없다. 시인 김춘수의 '꽃'에서도 이름 덕분에 의미를 갖게 되었고, 어린 왕자도 사막의 한 송이 장미에 이름을 부르면서 지구상에서 유일한 하나의 꽃이 되었다.
우리가 사랑니라고 부르는 대상은 어떨까?
다른 문화권과 달리 우리가 선택한 표현은 '사랑'이었다. 오히려 미운 대상일 수도 있는 그 존재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혹시라도 미워할 수 있는 마음이 중화된 것은 아닐까? 사랑니의 입장에서 보면 그 시기에 자라게 된 원인이 자기 탓이 아닐 수 있지 않은가. 마지막에 자라는 순서는 이미 자리를 잡은 다른 치아들에 비하면 불리하다. 비슷한 시기에 자랄 수 있었으면, 예쁘게 자리 잡아 오래도록 함께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리한 조건에 의해 쓸모없고, 빼버려야 할 대상이 되는 치아 입장은 얼마나 서러울까. 그런 마음을 잘 알아서 이름이라도 '사랑'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준 우리 문화는 참 아름다운 것 같다.
대부분 사랑니는 뽑혀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니'라는 이름 덕분에 단순한 치아가 아니라, 인생의 특정한 시기를 상징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성인이 돼서 경험하는 사랑니는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결국 쓸모가 아니라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그 존재가 결정되는 것이다.
나의 이름은 어떤 의미로 불리고 기억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