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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동전

100원짜리를 추억하며

by 송기연

오늘 운동 후 100원짜리 동전으로 커피 내기를 했다.

문득, 오랜만에 동전을 보는구나 생각했다. 예전에는 지갑 속에 얼마의 동전은 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금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사회가 되면서 동전을 보기 힘들어졌다. 그 많던 동전은 다 어디에 가 있을까? 이제는 어린이들의 돼지저금통도 보기 힘들다. 근래, 10원짜리 동전을 본 적이 있는가?


현재,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동전은 총 4종이다.

10원, 50원, 100원, 500원짜리가 그것이다. 1원짜리와 5원짜리는 1992년에 각각 너무 낮은 가치와 사용처 부족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공식적으로는 법정 화폐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라졌다. 지금은 각종 카드와 모바일, 간편 결제 등 신기술이 화폐의 기능을 상당수 대신하고 있다.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만드는 비용이 약 40원이라고 한다.

화폐가치보다 제작 비용이 더 커지는 것을 '주화역산(Seigniorage Loss)'이라고 한다. 원인으로는 동전제작에 사용되는 구리와 니켈 등의 금속의 가격상승도 한 요인이지만, 문제는 사용처가 줄어든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한국은행에서도 동전의 제조량을 꾸준히 줄이고 있다. 동전제조 비용은 2011년 약 958억 8,000만 원이었던 것이, 2020년 기준으로는 약 181억 9,000만 원으로 약 81%나 줄었다. 반면 화폐는 제작 비용이 액면가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간혹 고액권 지폐의 경우에는 위조 방지를 위한 첨단 기술과 재료가 사용되지만 제작 비용이 액면가를 초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으로도 동전수요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일부 전통시장이나 유료도로 일부에서 여전히 동전이 필요하지만 그 빈도나 비중은 줄어들 것이다. 이제는 자판기, 인형 뽑기도 동전 없이 사용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많은 곳에서 동전 결제 시스템이 사라지고 있다.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걸던 공중전화도, 시원한 음료수를 먹던 자판기도 이젠 더 이상 없다. 대표적인 동전이던 100원짜리는 이제 어디에도 그 역할을 찾아보기 힘들다. 비록 작은 단위였지만 유용하게 쓰이던 100원짜리가 아니었던가


혹시, 기억하시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트에서 카트를 사용하려면 100원짜리 동전이 필요했다. 쇼핑 이후 카트를 한 장소에 모으기 위한 용도였는데, 한 광고기획사가 캠페인으로 이 100원짜리 동전을 모으려고 했다. 목적은 기부였다. 화폐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100원짜리의 새로운 역할이었고, 이를 본 순간 무릎을 탁 쳤다. 그러나 그 캠페인은 일회성으로 그쳤다. 좋은 아이디어는 약간 모방해도 괜찮다. 당시 나는 이 캠페인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했다. 그래서, 카트에서 동전을 넣는 곳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쇼핑 전 100원짜리를 넣고 나면 바로 카트에 붙은 작은 스크린에 메시지가 나온다.



"100원을 기부하시겠어요? 아니면, 가져가시겠어요"



사용자는 둘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기부를 선택한 사람의 카트에는 초록색 불이 켜진다. 찾아가겠다를 선택한 카트는 아무 불이 켜지지 않는다. 기부카트는 쇼핑하는 기간 내내 '착한 카트, 착한 고객'으로 인식된다. 100원을 기부함으로써 나는 개념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혹시 모를 쇼핑기간 중 진상고객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스스로 기부를 선택한 착한 사람이기에, 행동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모인 동전들은 한 달 단위로 인근 복지기관이나 단체에 쇼핑몰 이름으로 기부한다. 그런 시스템을 운영하는 쇼핑몰 역시 지역에서 '착한 쇼핑몰'이 된다. 요즘 표현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ESG활동이다. 나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기획서를 제안했으나 선택되지 못했다. 아이디어가 별로였을까, 시기상조였을까 한동안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이제는 마트 카트에서도 100원짜리는 사라졌다.


언젠가 동전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르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동전이 화폐로써의 가치는 없어진다 해도 다른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는 비록 찾지 못했지만, 다양한 동전의 역할이 있으리라 본다. 동전 없는 사회가 되더라도, 여전히 동전은 필요한 곳이 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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