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멈출 수 없을까?
훔쳐보기는 인간의 본능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위험을 피하고,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고, 경계를 했다. 그리고, 타인에게도 관심이 많았다. 나를 위협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고, 어떤 감정일지도 몰라 늘 쳐다보거나 훔쳐봤을 것이다. 현재는 그럴 이유가 없지만 여전히 훔쳐보는 사회적 행위는 진행형이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타인의 삶이 관심의 대상이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라도, 본능적인 호기심은 여전하다. 대신 내가 대놓고 쳐다보는 것은 안된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슬쩍 훔쳐보는 기술이다. 혹시라도 보다가 들키면 시치미를 딱 잡아뗄 정도로만 보면 된다. 현재사회를 살아가면서 아주 유효한 기술이지만, 고도의 스킬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도 숱하게 누군가를 훔쳐보고 있다. 헤어진 남친, 여친의 인스타 계정을 훔쳐보고, 타인의 맛집리스트를 훔쳐본다. 남의 스마트폰은 왜 이렇게 관심이 갈까? 지하철이나 버스라면 그 관심은 커진다. 누군가는 가자미 눈으로 훔쳐보고, 그걸 알게 되면 기술적으로 스마트폰의 각도를 조정한다. 이런 수고를 줄이는 스마트폰 필름이 나오면서 창과 방패의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제품명은 '사생활 보호필름'이다.
원래 훔쳐보기의 대상은 주변인이다.
예쁜 여학생을 몰래 훔쳐보는 것은 남학생의 의지가 아닌 본능이다. 자연스럽게 눈길이 돌아간다. 쇼츠중에서 커플이나 부부의 앞으로 과하게 섹시한 차림의 여자를 지나가게 하고 남자의 반응을 보는 몰래카메라를 봤다. 대단히 잔인하지 않은가. 그러나, 몇몇은 본능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정면을 쳐다봤다. 대단한 의지다. 우리말에 뒤통수가 뜨겁다는 표현이 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예전 그 예뻤던 여학생도 다 알았을 것이다. 이렇게 예전에는 훔쳐보기는 대상은 엄연히 실재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하러 가면 액션영화를 고르면서, 눈은 성인영화 코너로 돌아가는 가자미 신공을 펼치곤 했다.
어릴 때 친구집에 놀러 가면 나는 자주 친구의 책상 서랍을 뒤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그건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친근함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다지 서로 감출만한 것도 없었다. 보통 남학생들은 일기도 안 썼다. 기껏해야 숨겨둔 건강 다이제스트나 썬데이서울 정도가 전부였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훔쳐보기는 범죄가 될 수 있다.
지금은 훔쳐보기 대상이 확대됐다.
SNS가 등장하면서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내가 손가락만 움직이면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들의 삶을 그냥 볼 수 있다. 내밀하고 사적인 감정까지도 아무 필터 없이 볼 수 있다. 최신기술은 더 이상 훔쳐보기를 음지의 영역에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인 노출을 권장하고 있고 사람들은 여기에 환호한다. 노출과 훔쳐보기, 윈윈전략이다.
지금의 훔쳐보기는 예전 훔쳐보기와 다르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애써 나와 비교하면서 낙담하고,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질투도 한다. 한마디로 훔쳐보기의 짜릿함은 불편한 사회적 소비현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기업은 은근슬쩍 노출하는 광고를 통해 소비를 유도한다. 인플루언서에게 훔쳐보기는 관심을 받기 위한 기술이다. 관음적 소비형태는 이제 효과적인 광고채널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안다. SNS를 통해 보이는 타인의 삶은 가공된 것이다. 포장되고, 꾸며진 것이 대부분이다. 노벨 포토샵을 줘도 될 사진들이 넘쳐난다.
이제 이런 식의 훔쳐보기는 재미없다.
훔쳐보기의 진수는 감추려고 했던 것을 빨리, 그리고 몰래 보는 맛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다. 대놓고 봐주기를 바란다. 김이 팍 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나의 삶도 타인에게는 어느 정도 가공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완전 생얼 그대로 밑낯을 보여줄 자신이 없다. 아마 모두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나를 돌아본다면 너무 식상한가.
그렇지만, 나를 온전한 내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 아무런 필터나 조작 없는 나를 대하는 나는 어떨까. 거창하게 명상 같은 것이 아니라도 좋다. 훔쳐보는 것이 아닌 내 모습에서 조금씩 필터 없이 스스로를 가꾸는 삶도 훔쳐보기만큼이나 재밌을 것이다. 나의 밑낯은 내가 잘 아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