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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기능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

다투는 것은 하수의 유일한 역할

by 송기연

디자인은 기능을 위한 보조도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기능 역시 디자인의 본원이 아닌 것과 동일한 원리다. 기능과 디자인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지만, 기능의 전달대상이 사용자(사람) 일 때 디자인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기능을 구현하는 것은 기능의 문제다. 기능의 입장에서 디자인을 보고, 디자인의 입장에서 기능을 보면 된다. 어느 것이 앞서고 누가 중요하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디자인과 기능 중 어느 쪽 비중이 크냐에 따라 의견은 엇갈리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기능 중심인지, 디자인 중심이지만 알아보는 눈만 가지면 된다.


제품의 쓰임새는 여러 가지다.

기능이 위주가 되는 제품이 있고, 디자인이 위주가 되는 제품이 존재한다. 보통 출발은 기능에서 시작된다. 여러 유사한 기능을 가진 경쟁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면 기술의 평준화 현상이 발생한다. 이전에도 기능과 디자인이 동등한 비중으로 출발하기도 한다. 초기 시장을 확실히 선점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얼음정수기 디자인권 상황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기술이나 기능의 변별력이 크지 않다면 출발부터 디자인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현실적이다. 아마 현시점에서는 대부분 생활용 제품의 기술평준화는 이루어졌고, 그 편차는 크지 않다. 초기 시장에서 디자인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당연한 이유다.


기능 관점에서 보자.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능은 기술력의 발현이다. 기능 혼자 오롯이 서지 못한다. 기능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사용될 때에만 그 존재가치가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는 디자인이 필수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버튼이나 조작화면의 아이콘이 디자인의 전부가 아니다. 디자인은 사용자나 수용자의 태도, 경험을 모두 아우른다. 디자인의 개념은 기능을 단순히 부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수준의 역할을 원하는 영역도 있을 것이다. 필요와 용처에 맞게 활용하면 되는 것이니 획일적인 기준을 맞출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제조자의 입장에서는 기능에 포커스를 맞춘 전략은 변별력을 가지기 어렵다. 전문 엔지니어 수준은 되어야 그 차이를 인지하지 일반 사용자나 수용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디자인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자칫 단순하게 생각하면 색깔 없이 여기저기 활용하기 쉽게 들리겠지만 실은 기능 못지않게 복잡하고 어렵다. 실질적인 사용성과 미적취향은 고정된 값이 아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모두 다르다. 그래서 디자인은 기능과 경쟁관계나 비교의 대상이 아닌 화합과 융합의 주체자가 된다. 기능과 사용자 사이에서 존재하는 존재자로서 디자인의 역할은 유동적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인지하는 디자이너는 우수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이런 활동은 모호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수한 디자이너인지 평범한 디자이너인지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만의 디자인 철학과 관점이 존재한다. 이 애매한 위치에서 적절한 포지셔닝을 하면서 개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기계적인 중립이나 기회주의적 태도의 관점이 아니다. 전체를 판단하는 흐름과 그 속에서 색깔을 드러내고 이를 여러 프로젝트에 연계하다 보면 확연한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기능은 디자인과 같은 차원에 있지 않다.

서로 통섭하는 사이가 될 때 최종결과물이 사람에게 주는 경험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반목과 대결의 상대가 아닌 화합과 융합의 대상으로 서로를 인정할 때 좋은 기능, 좋은 디자인이 실현될 것이다.


다투는 것은 하수의 유일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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