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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디자인과 엔트로피

지속가능은 무한동력이 아니다

by 송기연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디자인계에도 이슈다.

무분별한 소비의 반대 개념을 너머 묘사되면, 친환경과 유사한 의미로도 쓰인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장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즉, 단순히 재료의 성질이나 특성에만 국한되지 않으면서 제품 수명주기 분석에 의해 제조 및 배송에 많지 않은 에너지가 들어가야 하며, 적절한 폐기를 통한 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모호하다. 단어 자체의미로는 현재의 어떤 상태를 유지하거나 계속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Let it be라는 의미다.


현재의 상태는 어떤 식으로 지속 가능할까.

최소한 기준이 되는 현재 상태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그래야, 지금 시점에 서 있는 위치를 기준점으로 해서 더 나쁜 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게 현시점에서 내가 인지한 '지속가능'이다. 그래서 현재 출발점(현 상태)을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야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알아봐야 한다.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당연히 에너지가 필요하다.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s Hypothesis)은 진화학에서 거론되는 원리다. 주변 자연환경이나 경쟁 대상이 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떤 생물이 진화를 하게 되더라도 상대적으로 적자생존에 뒤쳐지게 된다. 주변 환경과 경쟁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화해서 적응해야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 진화하는 생명체가 환경을 초월하여 일방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이 사는 환경이 이렇게 묘사된다.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뒤쪽으로 이동해 버려서 그 자리에 멈춰 있으려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법칙의 세계가 그렇다. 지속가능을 여기에 대비해 보자.


지속가능하려면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지속가능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치 엔트로피의 법칙과 같다. 열역학 제2법칙과 같은 이것도, 열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무질서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 역시 가만있으면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의 반대쪽을 향한다. 한 곳에 서 있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속가능 디자인은 친환경 재료를 쓰고, 공정의 낭비요인을 줄임으로써 탄소배출을 감소하고자 하는 현재의 상태나 마인드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태를 위해 노력하는 현재 진행형 상태로 계속 달리는 시스템과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인 것이다. 지속가능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마치 무한동력과 같다. 한 번 주어진 에너지가 영원히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지속가능은 돌아서면 그 힘이 떨어져 버린다. 다양한 기술의 발전과 반환경적 활동 역시 날로 발전한다. 사람들의 경제가치와 환경유지에 대한 다양한 생각은 계속 서로 부딪힌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단 한 번의 시도로 지속가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속가능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친환경 재생재료를 쓴다고 해서 제대로 된 지속가능이 아니다. 탄소를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에 지속가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서 돌아서 다시 보자.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돌아보자. 여전히 지속가능 디자인인가? 우리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환경에는 자연뿐만 아니라 기술, 문화, 민족, 가치관 등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이중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것이 자연환경이기 때문에 이것만이 지속가능의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에너지가 들어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무질서는 언제나 증가한다. 이 우주의 법칙은 그린, 친환경 디자인 분야에도 적용된다. 공공분야나 복지, 유니버설 등 불특정 다수를 위한 디자인 영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단순한 재료나 가공방법의 변화만으로 지속가능의 의미를 구현하기는 어렵지만 누군가는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디자인 전문가라고 하면 이 '지속가능'이라는 희대의 화두가 좀 더 의미를 갖기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이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단순한 트렌드 용어로써가 아닌, 산업디자이너들이 갖는 원초적 책무(소비지향, 자본주의 폐해)에서 조금 더 벗어나고자 하는 당위의 도구로 생각해 보자. 지속가능은 무한동력이 아니다. 가식적 개념보다 실질적 실천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자.


제대로 된 지속이 실현 가능할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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