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꽉찬 하루
3월은 시작의 달이다.
추위는 물러가고, 학교는 교문을 활짝 연다. 겨우내 품었던 긴장은 하늘로 나풀나풀 난다. 찾아오는 봄을 시샘하는지 개강일 캠퍼스에는 이른 봄비와 찬 바람이 불었다.
모든 시작에는 풋풋한 아름다움이 있다.
항상 처음만 같아라, 초심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시작의 중요함을 강조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부분 처음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품었던 색은 바래지고, 정신은 옅어진다. 만물의 이치일까. 새로움의 에너지는 언제까지 유효한 것일까.
사람 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시작의 낯섦은 곧 신선함이다. 아직 많은 것을 알지 못하기에 신비로운 영역이 남았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신선함의 종식을 말한다. 더 이상 신비로움과 궁금증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시작되면 결정해야 한다. 익숙한 지루함을 견딜 만큼의 가치가 없으면, 관계의 유효기간은 끝난다. 오늘은 많은 새로운 만남을 했다. 덕분에 공통된 인연을 만들어갈 숙제를 한가득 가지고 왔다.
일은 왜 차례를 지키지 않을까?
할 일이 나한테 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아직 세상에 쓸모가 있다고, 할 일이 남았다고 즐거워해야 한다. 흥분되고 기대된다.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쌓이면, 그걸 하나하나 해치우는 즐거움이 있다.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하루 일정에서 해치운 일에 줄을 긋고, 뒷 쪽 여백에 "OK"라고 쓴 뒤 글자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쾌감이다.
봄은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오늘도 새 사람을 여럿 만났다. 당분간은 함께 이어가게 될 크고 작은 인연들이다. 이렇게 겨우내 움츠렸던 몸은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와 만나면서 뒤쪽 공간을 남겨둔다. 하나씩 동그라미 친 OK를 그려가는 상상을 한다. 마침내 만난 3월의 봄을 비로 시작했지만, 뭐 어떤가. 오랜만에 하루를 꽉 채운 느낌이다.
비내음이 흠씬 풍기는 봄의 길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