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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도구로써의 AI

정갈한 가르마의 마마보이는 매력 없다

by 송기연

글을 쓰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글쓰기 전문가인 작가의 도구를 상상해 봤다. 아마 책상 위에는 손으로 쓰다만 원고지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구겨진 종이가 떠오른다. 뚜껑이 열린 만년필, 커피잔과 담배도 생각난다. 너무 틀에 박힌 모습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원고지에 글을 적지 않는다. 글을 쓰기 편한 도구가 계속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타자기를 거쳐 컴퓨터가 만들어지고 이어 스마트폰도 등장했다. 말로 하면 글로 만들어주는 어플도 이미 많다. 쓴 글은 거의 비용 없이 사람들과 공유하는 세상이 되었다. 더 이상 글을 쓰기 위한 도구는 없을 줄 알았다.


인공지능(AI)이 등장했다.

이 신성은 짧은 시간만에 삶의 여러 분야를 정복해 나갔다. 파죽지세의 승기는 글쓰기 영역에도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AI를 활용한다. 도움의 수준에서 창작의 영역까지 분야는 전방위적이다. 이 능력 있는 점령군은 불평도 하지 않는다. 원하는 내용, 이전 글의 스타일도 군말 없이 익히고, 제법 비슷하게 필체도 재현해 낸다. 충성스럽기까지 하다.


나도 AI를 가까이 두고 있다.

글을 교정하기 위한 도구로, 글을 창작하기 위한 도구로 AI를 사용했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은 이제 그 영역에서는 AI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쓴 글에 대한 평가 정도로 만족한다. 물론, 더 많은 나의 문체에 대한 학습을 시키면 나에 수렴할지도 모른다. 몸이 편하게 되면, 실력은 줄어든다. 실제 얼마 전까지 브런치 글을 수정시키거나 창작도 시켜봤다. 초고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글도 잘 적어냈다. 하지만 거기에는 내가 없었다.


글쓰기 수업의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서 맴돈다.

안네의 일기는 그 어린 소녀가 겪었던 감정을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로 표현했기에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사람이 쓴 글에는 빈틈도 있고 감정도 있다. 그래서 글도 숨을 쉬는 존재로 작가를 대변한다. 솜씨 좋은 편집자는 글에서 저자의 온기까지 없애지 않는다.




모든 초고는 거칠고 미성숙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읽어보면 온통 울퉁불퉁한 것투성이다. 이후 스스로 꼴을 다듬는 한 번의 검수를 거친다. 계속 수정하다 보면 글이 조금 더 매끄러워질 수 있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그래야 내 글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이후 맞춤법 검사를 거친 후 발행한다. 내 브런치 스토리 글작성의 순서다.


AI에게 맡긴 글은 마마보이 같다.

머리에 정갈하게 가르마길을 낸 굿보이. 깔끔하고 정갈하지만 매력이 없다. 내가 사라진 글은 더 이상 나의 생산물이 아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된 곳에서도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컴퓨터가 없어도 디자인이 가능해야 제대로 된 디자이너다. 도구는 도구로써 기능해야 한다.


나는 종이에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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