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원하는 게 명확하다
영화 '검은 수녀들'이 쿠팡플레이에 공개됐다.
모티프가 된 전작 '검은 사제들'과 세계관을 함께 한다니 제작발표 시기부터 많은 관심이 있었다. 보통 오컬트 분야 영화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한국형 오컬트는 부산행 이후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OTT가 아닌 극장용 영화는 이제 더 큰 부담감이 생겼다. 관객이 기꺼이 극장을 찾는 수고와 별도의 비용을 지급하는 것에 부합해야 한다. 적어도 극장용 영화는 OTT용 드라마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영화의 시도는 신선했다.
금녀의 영역이라는 구마의식의 중심에 수녀를 두었다. 참고로 유사한 설정의 영화는 여럿 있다. 감독은 여기에 뭔가 색다른 콘텐츠를 원했지만 변별력은 의외로 약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몇 개의 영화적 장치를 두었으나
어떤 이유인지 감독의 의도는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단정하는 이유는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관람평에 있다. 이와는 달리 KOFIC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통계에 의하면 전국관객 1,667,237명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래서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를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도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이나 작가에 따라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속 배우들은 그들이 가진 최고치를 발휘하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는 힘이 없고, 배우들은 겉돌았다. 전작의 캐릭터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봤고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하다.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췄어도 음원이 싸구려 mp3 파일이라면 한계는 명확하지 않을까?
영화에도 이해관계자가 많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작에 관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영화가 시작할 때 투자사나 기관을 먼저 알려준다. 마치, 여기 이렇게 많은 곳에서 투자했으니 잘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여기에 배급이나 유통까지 포함한다면 영화 하나에 얼마나 많은 뱃사공이 있을지는 눈에 선하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고 하는 게 이런 것일까.
영화는 디자인과 닮은 구석이 많다.
최종 소비자는 결과만 본다.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디자인이 좋았는지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다. 영화평론가나 디자인전문가처럼 기획의도, 분석과 해석, 숨어있는 의도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디자인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부분 과정보다는 결과 위주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미흡, 충족, 뛰어넘는지로 나뉜다. 중간과정은 제작자들의 몫이고, 결과는 소비자나 관객의 몫이다. 그나마 영화는 낫다. 대부분의 제품은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K 콘텐츠는 이제 세계적이다.
아무도 더 이상 여기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형식이 영화든 드라마든, 배급방법이 극장이든 OTT든 형식을 가리지 않는다. 영역도 오컬트뿐만 아니라 SF, 히어로물 등 한국 콘텐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도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이제 많은 콘텐츠 능력을 펼칠 장은 열렸다. 기술적 표현능력이나 배급채널도 얼마든지 확보되어 있다. 자기 목소리를 낼 실력 있는 이야기꾼이 필요하다. 기존 질서나 시스템에 막혀있던 재야의 숨은 고수는 다른 핑겟거리가 사라졌다.
검은 수녀들을 뛰어넘는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