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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나의 가치는 누가 정하는가?

연봉, 기술, 사회적 지위?

by 송기연

사람의 가치는 무엇으로 정해질까?

연봉일까, 사회적 지위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일까. 사람을 가치로 나누는 건 반인륜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시간 단위 생산량이나 선거의 표로 사람을 산술화해 왔다. 그렇게 계산된 가치가 진짜일까? 아니면 그저 숫자 놀음일 뿐일까?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가히 놀랍다.

생성형 AI는 이제 에이전트 AI를 거쳐 인간형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미 일부는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현재가 된 미래를 현재로 살아가고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고 산다. 그 걱정의 본질은 하나다.


'과연 나는 미래에도 쓸모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창의적 분야는 안전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나이브한 예측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전통적인 예술 분야였던 미술이 가장 먼저 AI에 점령되었고, 곧이어 디자인, 음악, 영상 등도 하나둘씩 AI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전문가들의 숙달된 표현 능력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누구나 AI를 활용하면 창의성을 흉내 낼 수 있는 시대다. 특히 디자인 분야는 클라이언트가 못 만들어서 전문가를 찾는 게 아니다. 시간 절약을 위해 대리하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 가성비 좋은 결과물이 시장을 지배한다면, 인간의 창의성은 단순한 옵션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산업혁명 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를 배척하고 파괴하는 저항 운동이었다.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AI 시대에도 러다이트 운동 조짐이 보인다. 그러나 그때도 그랬듯이 이런 움직임은 지나가는 약간의 홍역과 인공지능을 거부하며 아날로그의 향수를 강조하는 사람들. 는 생활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그랬듯이, 이런 움직임은 단지 지나가는 홍역일 뿐이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 AI 없는 세상도 상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기술은 거스를 수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무엇일까? AI 시대에도 나만의 가치를 지킬 방법을 찾는 것이다.


타인의 기준으로 나의 가치를 판단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인간의 가치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기준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정의는 세상에 없던 것을 형식과 내용의 조화 속에서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단순히 미추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콘텐츠(기술, 사용성, 맥락)를 아름답게 실체화하는 일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내 가치를 표현하고 증명할 수 있다면, AI 시대에도 나는 나만의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해야 한다.

AI도, 다른 사람도 그 답을 줄 수 없다.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한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고 만들어가는 사람이 결국 남는다. 미래의 가치는 스스로 만드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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