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계시록을 보고(노스포)

소문난 뷔페지만 얼큰한 라면 생각이 난다.

by 송기연


죄와 벌, 회개와 용서.

이 조합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 같다. 죄를 규정하는 것은 누구이며, 죄를 심판하는 이는 또 누구인가. 그 죄의 기원은 어디에서 왔고, 모든 죄를 용서할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종교와 철학의 영역을 넘어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많은 이야기꾼들이 이 주제를 다뤘다.

누군가는 법과 정의라는 잣대로, 또 다른 이는 상상력에 기댄 피의 복수로, 때로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종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넷플릭스의 '계시록'도 이 흔하디 흔한 주제를 새롭게 풀어내려 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것이 세상의 순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불완전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을 움직이는 당위성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성경에는 십계명이 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윤리와 도덕의 근간을 제시한다. 총 10가지로 구성된 이 약속은 실제로 지키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생각뿐만 아니라 마음속에서도 지켜야 한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약속이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마음속의 죄가 아니라 실제로 저지른 죄를 다룬다. 종교상의 벌이 아닌 현실의 범죄와 그로 인한 대가를 이야기한다. 문제는 그 죄가 다양한 이유와 그럴듯한 핑계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흉악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재소자들이 신에게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피해자의 의견은 없었다. 영화 '밀양'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연기는 아쉽다.

어떤 계기로 인해 변해가는 캐릭터의 연기는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플롯은 익숙한 클리셰로 가득하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기도 쉽지 않다. 사이비 교주 같은 집착과 광기를 점점 더 보여주었다면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영화적 장치가 탄탄하지 못해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도 든다.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는 영화 내내 내가 주인공이 된듯한 갑갑한 느낌이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결코 새롭지 않다.

이런 장르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사한 영화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뻔한 구성이나 대사는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물론 주요 타깃고객을 일반 관객으로 잡았을 수도 있다. 영화는 십계명을 어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한 겉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야기는 딱 그 정도에서 멈춘다. 빌런의 발작 행위가 되는 모티프도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심경변화도 그다지 큰 공감이 가지 않는다.


아무튼 영화는 끝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킬링타임용으로는 적당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라는 자유로운 제작 환경,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들, 경험 많은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좋은 영화는 관객이 2시간 동안 몰입하게 만들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못했다. 중간에 스마트폰도 보고,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오며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문득, 후기를 적지도 않았던 영화 '빅토리'가 생각난다. 소문난 집에 먹을 게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배만 부른 더부룩한 기분이다.


얼큰한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폭삭 속았수다 1화를 보고(노스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