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흐린 기억 덕분이다.
영드 블랙미러 시즌7 Ep5. 율로지(Eulogy)는 추억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현실은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시공간이다. 반면 지나간 시간들은 당시의 기억과 감정이 조금씩 옅어지면서 하나의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된다. 추억이라고 불리는 모든 과거의 사건은 점점 희미해져 갈 뿐이다.
Eulogy.
사전을 찾아보니 (장례식이나 고인에 대한) 찬사, 찬미, 찬양이라는 뜻이 나온다. 에피소드 역시 출발은 죽음이다. 상상으로 이뤄지는 가까운 미래에는 첨단 기술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개인의 어렴풋한 기억 역시 기술의 힘을 빌어 보다 생생하게 만들어 낸다. 에피소드 마지막의 장례식 장면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끔찍하지만, 이야기 속의 기술이 현실이 된다면 한 번에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 동시에 합리화의 존재다.
생생한 기억이라도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왜곡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한국 남자의 경우 힘들었던 군생활은 자랑스러운 무용담으로, 차였던 연애 기억은 먼저 퇴짜를 놓은 것으로 변한다. 한때 어려웠던 경험은 남 탓이고, 어중간했던 내 성과는 대단한 것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의식하지만 이후 스스로 진실로 여기고 자기를 합리화한다. 방어기제인지 기만인지 알 수 없다. 스스로가 상처되는 일을 왜곡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모든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가 있다.
과거 기억 속의 그(그녀)는 모두 아름답고 멋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던 과거의 그 찬란한 기억의 중심에 내가 있기에 상대는 모두 애틋함을 가질 수 있다. 아마, 블랙미러처럼 당시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온갖 유치하고 치졸한 감정싸움의 연속 아니었겠는가? 가지지 못한 현실을 부정하듯 지나온 감정의 색을 순도 높은 채도로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망상은 축복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순간 판단에 대한 후회와 잘못으로 스트레스는 계속 늘어만 갈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지금도 그런 순간은 계속 쌓이고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모든 것을 붙잡을 수 없다. 그냥 그대로 두자.
Let it be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