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개발을 할 때 2 D도면은 계륵(鷄肋)일까요?

by 송기연


시대가 참 빨리 변하는 것 같습니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그만큼 빠른 이유일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바뀌는 시대를 생생하게 눈으로 목격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해보니, 대학 과제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생겨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리어답터들은 언제라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졸업 즈음에는 시각디자인 전공 친구들은 파워맥이란 것을 쓰더군요. LC475만 해도 학생 입장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1,2년이 멀다 하고 컴퓨터 사양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아무튼, 90년대 중반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알바를 하던 기획실(당시에는 소규모 디자인 회사를 이렇게 불렀습니다)에서 인쇄용 식자(植字) 심부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따로 식자만 타이핑해주던 곳도 있었지요. 그러다 외장하드도 들고 다니면서, 서서히 디지털이 디자인계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제품 디자인에도 컴퓨터 기술은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최소한 제가 근무했던 회사에서는 CATIA를 썼는데요. 2D로 도면 그리는 것을 위주로 하다가 어느 순간 3D 모델링로 주 업무내용이 바뀌었습니다. 통상 제품 디자인의 순서를 말한다면 2D 도면 다음이 3D 모델링이었습니다. 대략 정리해본다면,



시장조사 → 콘셉트 설정 → 아이디어 스케치 → 2D 도면 → 3D 모델링 → Mock-up → 금형 → 양산



이런 정석 같은 진행과정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로 통합되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Mock-up무용론 같은 게 나오기는 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자꾸 대체기술이 나오고 버전은 올라가고 디자이너의 업무는 편해집니다. 렌더링 툴은 아마 말하지 않아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짧아진 작업시간만큼 초기 방향 설정이나 디테일에 비중을 두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이제는 2D 도면을 먼저 그리지 않고 3D 모델링을 하면서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다듬어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역시도 다양한 기능들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가능해졌지요.


그럼, 2D 도면을 그리는 행위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전통적인 프로세스를 따라야 할까요, 아니면 새로운 기술로 효율성을 추구해야 할까요? 2D 도면은 3D 모델링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서의 역할과는 또 다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효율적으로 보면 생략하거나, 혹은 3D 파일에서 Export 하면 됩니다.

개발단계를 넘어서 전체 제품 수명주기로 보면 2D 도면의 역할이 새롭게 보입니다. 2D 도면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 더할 나위 없는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개발과정 중 혹은 이후 이해관계자들 간의 의사소통에는 대체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컴퓨터 화면으로 3D 파일을 보면서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놀랍게도 가볍고 호환성이 높은 3D 파일 뷰어와 하드웨어의 등장이 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보다 IT 환경이 좋지 못한 해외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 2D 도면도 라디오처럼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장의 개발자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려면 기본적으로 도면을 읽을 줄은 알아야 하고, 또한 기초 조형교육의 표현 수단으로써는 전공자들이 대학에서 익혀야 할 필수적인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변화에 맞게 수용하고, 가치는 존중하며, 쓰임은 잘 활용해야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또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이 어떤 식으로 뒤집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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