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새로운 출발점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세상을 살아간다.
우주에서 유일한 그 세상의 전부는 나다. 모든 우주의 시간은 나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유아기 빅뱅부터 출발해서 아동, 청소년, 청년, 중년, 장년, 노년의 우주가 진행되고 있다. 본의든 아니든 삶은 살아진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삶이 될까, 아니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이 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그것이다. 타의 모범이 되는 위인의 삶은 언감생심이고, 그래도 좋은 쪽에 가깝고 싶은 욕심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냥 우연이다.
특별히 숭고하고 고귀한 목적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물의 영장으로의 존엄을 말하지만 실은 존재를 위한 나의 선택권은 없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의 모습인 내가 있었고, 지금은 성인이 한참 지난 내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욕망과 희망이 교차했다. 많이 가지고 싶고, 되고 싶은 여러 목표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역시 우주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공존한다. 누구나 한 번 살아가는 인생은 공통분모다. 우연히 세상에 왔지만, 살아가는 것의 주체는 명확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란 게 별도로 있을까?
젊은 청년 대학생이나 지긋한 나이의 중년이나 둘 다 세상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을 명료하게 있을 리도 만무하다. 나는 그 이유가 저마다 살아내는 세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우주는 나의 우주와는 다르다. 켜켜이 쌓아온 우주의 흔적은 출발부터 다르게 진행되었다. 부모, 형제, 친구 그 누구라도 나의 세상과는 다른 우주다. 다만, 참고가 될 뿐이다.
내가 살아내고 있는 세상은 유일하다.
그 우주를 살아가는 주체인 나 역시 고유한 존재다. 모든 생각과 사고, 그에 따른 행위 기준은 나다. 내가 살아내 온 모든 시간은 내 우주의 흔적이다. 뒤돌아보면 삐뚤빼뚤한 구간도 효율적인 직선구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알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망각은 축복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지나온 길 못지않게 남은 길 역시 중요하다. 매 순간 출발점은 지금이다. 지금 숨 쉬고 살아있는 내가 모든 미래의 기준점인 셈이다. 그 길의 가이드를 다른 우주에서 찾을 필요 없다. 아니 찾을 수도 없다.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새로운 기준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의 첫 출발점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