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청춘의 시간
남자에게 군대는 트라우마 같은 곳이다.
제대한 지 30년이 넘었어도 가끔 피곤할 때면 꿈에 종종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의 기억과 감정은
여러 복합적인 감정과 시간으로 뒤엉켜 있다. 처음 군대에 발을 디뎠던 1992년 5월 16일에서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이제 자식뻘 군인들이 그 자리에 있다. 많은 것이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나는 92년 5월 군번으로, 30기계화보병사단에서 근무했다.
사단 사령부 인사처 인사행정병이었는데, 주요 업무는 행사기획과 태권도 단증 관리, 사건사고 취합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92년 5월부터 94년 8월간 기억으로 보면 참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별일 아닌 것부터 심각한 안전사고에 이르기까지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 청년들을 모아놨으니 그 수도 빈번했다. 나도 그중 별것 아닌 사고를 당했다. 일병 때 농구를 했다. 짬도 안 되는 계급이니 내가 원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거의 병풍 수준에 죽어라 뛰어다니는 것이 유일한 임무였다. 게임이 끝나가는 저녁 즈음에 갑자기 얼굴에 뜨거운 것이 와 부딪혔다. 경기 중 몸싸움을 하던 고참 하나가 이른바 노룩 패스를 했는데, 그게 내 얼굴로 온 것이다. 계속 긴장하고 있었는데 어두워서인지 순간 땀 때문인지 아무튼 나는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얼굴을 강타당한 것이다. 안경을 쓰고 있는 얼굴, 그것도 눈 부위에.
순간 별이 번쩍했다.
안경은 저 멀리 떨어져 나갔고, 얼굴에는 통증에 이어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고참들은 놀라서 뛰어왔고, 얼굴을 감싼 손을 떼내었을 때 뭔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피였다. 그야말로 주르륵 이었다. 속으로 큰일 났다 싶었다. 공에 맞은 눈은 뜰 수 없었고, 안경 파편이 얼굴살을 찢은듯했다. 오른쪽 눈 위와 볼까지 화끈거림은 이제 큰 통증으로 변해서 온 머리로 퍼져나갔다. 소대에 난리가 났다. 일직하사는 당장 의무대에 연락하고 얼굴을 다친 일병 조무래기는 고참과 함께 지프차를 탔다. 얼굴을 감싼 수건에서는 계속 피가 흘렀다.
의무대에는 당직장교가 없었다.
급하게 호출받은 의무장교가 BOQ에서 오기 전까지 차가운 의무대 침대에 혼자 누워있으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눈에 파편이 박혔을까, 실명하면 어쩌나. 집에는 뭐라고 말하나.. 오만 걱정거리가 얼굴의 아픔을 앞섰다. 헐레벌떡 뛰어온 의무장교가 나에게 달려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레지던트 정도였을까? 계급은 중위였다. 그는 내 상처에 식염수를 들이붓고, 소독약으로 긴급조치를 했다. 그러고는 얼굴에 박혀있을 파편을 찾아보고 난 뒤 나에게 눈을 떠보라고 했는데, 겁이 났다. 가까스로 앞이 보이고, 장교의 손가락을 읽을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문제는 찢어진 피부였다.
오른쪽 눈을 기점으로 눈썹에서 볼 중간까지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칼로 예쁘게 생긴 게 아니라 피부상태는 너덜너덜했던 것 같다. 잠시 상처를 살피던 장교는 상처부위가 눈과 너무 가까워서 마취가 안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이 마취에 자신이 없었는지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마취는 안되니 무조건 참으라고 했다. 거참. 말이 되나. 그래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까라면 까는 것이 군대 아닌가.
눈만 뚫린 초록색 보호대를 얼굴에 덮고난 뒤 봉합이 시작됐다.
봉합하는 바늘은 아팠지만 상처가 아픈 게 더 컸던 기억이다. 아무튼 참고 또 참으니 참아지더라. 제법 긴 시간 동안 그 장교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 치료가 끝나고 거울을 보니 가관이었다. 예전 만화영화 중에 애꾸눈 하록 선장이 있었는데, 너덜너덜한 봉합실과 퉁퉁 불은 얼굴이 딱 그것이었다. 사회에 나가면 성형수술하라는 권유와 함께 의무대를 나왔다. 이대로 제대하면 길거리에서는 아무도 못 걸들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30년이 지났다.
지금은 얼굴에서 흉터를 찾을 수 없다. 역시 시간이 약인가. 이 기억은 나름 인생에서 큰 사건이었지만 그동안 기억에서는 없던 일이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 다시 기억났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머리는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강의에서 학부 1학년 남학생 2명이 신검 때문에 결석했다.
대한민국에서 병역은 의무라지만 당사자 청년에게는 엄청난 일이다. 스마트폰을 쓰고, 복무기간도 짧아졌다지만 여전히 그곳은 남자에게는 트라우마 같은 곳이다. 그 안에서 아무리 많은 일이 생겨도 정문을 나오는 순간 입을 닫아버린다. 지금도 많은 젊은 청춘들의 시간은 그곳에 멈춰있다. 한반도에 빨리 평화가 자리 잡아 더 이상 청춘들의 기억이 그곳에는 없으면 좋겠다. 12.3 비상계엄으로 군인에 대한 위상이 많이 깎였지만, 의무입대한 청년들은 또 다르다. 지금도 군에서 청춘의 시간을 힘겹게 보내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보낸다.
꽃 같은 청춘의 시간이 그 안에서도 안전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