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게 되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비법, 비밀, 비기.
비(秘)는 감추거나 감춰진 상태를 의미하는 글자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 숨겨진 여러 가지 비법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비법을 알거나 취득한 사람은 남들과 다르게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는다. 로또 비법, 공부 잘하는 방법, 특별한 요리 레시피, 연애를 잘하는 법, 돈 잘 버는 비밀이나 투자의 고수 등 세상에는 숨겨진 여러 가지 비법이 즐비하다. 진짜로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도 생긴다. 내가 지금의 삶에 만족 못하는 것은 비법을 몰라서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아니다.
그건 단순히 현실을 부정하거나 벗어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방어기제 같은 변명이다. 여기 디자인 회사가 하나 있다. 다른 회사 디자인은 잘하고 있으니, 자체 상품을 하나 기획하고 디자인했다고 해보자. 만들고 나면 팔아야 하는데, 예상보다 판매량이 시원찮다. 남들은 나보다 못한 제품도 훨씬 잘 팔던데, 아무리 봐도 내 제품이 품질이나 디자인이 월등하다. 디자인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판매나 유통을 하는 무슨 대단한 비법이 있을 것이다. 그것만 찾는다면 나도 남들처럼 잘 팔리는 제품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게 일반적인 의식의 흐름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으니 뭔가 변명거리를 만들고 스스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현재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없다. 특정한 몇 가지 비법을 알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 생각하고 세상에 없는 무엇인가를 찾아다닌다. 비법, 비밀이라는 이름이 붙은 강좌를 듣고 책을 읽어봐도 도통 와닿지 않는다. SNS 방문객을 단숨에 늘리고 싶은데, 영업 실적을 더 높이고 싶고, 공부도 잘하고 싶으며, 연애도 주도적으로 즐기고, 살도 빼고 싶다. 당연히 돈도 왕창 벌고 싶은데, 그 비법은 너무 꽁꽁 숨어 있다. 그리고 문제는 보통, 여러 가지 상황이 얽혀서 발생한다. 하나의 마스터 키로 모든 문을 열 수 없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지금 세상은 충분히 복잡하고 복잡하다.
비법 대신 방법론은 있다.
일상용어로는 '요령'정도가 되겠다. 비법과는 달리 요령이나 방법론은 마술처럼 뚝딱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대신, 속도는 더디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맞춤형으로 가장 빠른 시간에 문제해결이 되게 도와준다. 세상에서 가장 나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말이다. 성공팔이들의 주요한 마케팅 방법이 이런 '비법' 아닌가. 수강신청을 하기 전인 당신은 이 단순한 '비법'을 몰라서 지금의 어려운 현실 속에 있다. 이 '비법'을 알게 된다면, 당신도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수강하고 구매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사람들은 이 '비법'에 매료된다. 실제 수강을 해보면 쌀로 밥 짓는 얘기다. 우리가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실은 그들에게도 이런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법을 내가 알게 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작은 요령은 얼마든지 삶에 도움이 된다. 이런 비법은 '꿀팁' 정도의 표현으로 통용된다. 옷에 붙은 껌을 흔적 없이 지우는 법,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 마시는 음료, 체했을 때 약 대신 먹는 것, 숙취에 좋은 음식 같은 것은 생활 속 꿀팁이다. 비법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삶에는 큰 도움이 된다. 딱 이 정도 수준이다. 우리가 너무 비법에만 몰두할 때 삶은 피폐해진다. 세상에 그렇게 똑 부러지는 비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있다고 해도 그게 나와 딱 맞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를 들어, 돈을 잘 벌려면 경제흐름을 알 수 있게 새벽에 2시간 경제신문을 읽고, 분산 투자를 하며, 종잣돈을 잘 운영한다. 단기적으로는 우량한 주식과 펀드에 투자하고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채권과 부동산에 집중하라.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비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개인차면서 상황에 따라 다르다. 비법의 형태를 파 내어 눈앞에 두면 대부분 이런 형태다. 원론적이라는 말이다.
현재 상황을 확 뒤집을만한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존재하더라도 나만 그것을 알 수 있지도 않고, 그 비법이 나의 상황이나 조건에 딱 맞게 부합될 확률까지 생각한다면 거의 0에 가까워질 것이다. 방법론만 신봉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야장천 방법론과 요령만 좇다 보면 진짜 일을 하지 못한다. 비법과 방법론은 둘 다, 일을 하면서 도움을 받는 수준이지 이 둘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세상 누구도 모르는 비법은 나도 모르는 게 자연스럽다. 나만 알고 대부분 세상 사람은 모르는 정보는 나 밖에 없다. 내가 곧 비법이다. 정보의 희소성에 무게를 둔다면 이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비밀과 비법에 대한 집착은 이제 조금 내려놓자.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