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게 거짓말을 해봐

by 송기연

우리는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

가벼운 공치사나 관계를 위해 적절한 선에서 하는 거짓말까지는 애교이거나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정해야 하는 상황이나 제법 심각한 상황에서도 정직하지 못한 태도는 문제가 있다. 사람마다 적정한 선(線)이 존재하는데 이게 무너지는 순간을 종종 경험한다. 정치인들이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이 요령이나 전략으로 통용되는 사회는 신뢰가 바로 서기 어렵다. 비즈니스를 위해 사양을 속이거나 납기를 어기는 것은 정직유무를 떠나서 퇴출되어야 할 사안이다.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할까?

특별히 어떤 이익을 추구하거나 순간을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철저히 계산된 거짓말인데 이건 심각한 문제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거짓말을 스스로 하는 사실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이건 치료가 필요하다.


어제 겪었던 일이다.

그래픽 수업의 중간고사로 포스터를 작업하게 했다. 학부 1학년들이라 작업 퀄리티보다는 창의적인 면을 주로 보기 위한 목적에 쉬운 학교 홍보포스터를 주제로 냈다. 아직 어설프지만 각자 최선을 다해 작업하고 2시간 안에 완성했다. 오전과 오후 분반으로 진행했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오후반 학생 하나가 오전반 학생이 작업한 결과물을 살짝 수정해서 제출한 것이다. 작업 결과물 하나하나를 화면에 띄워 품평을 하고 나서 오전반 학생이 이를 발견하고 나한테 말했다. 전체 작업결과물을 화면에 띄웠으니 다른 학생의 작업물을 제출한 그 학생이 나한테 먼저 잘못했다고 말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 주는 결석했고, 어제 나는 그 학생을 개인적으로 불렀다.


"쌤한테 뭐 할 말 없어?"


그 학생은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조용히 강의용 컴퓨터 쪽으로 불러서 다시 물었다.


"중간고사 관련해서 진짜 할 말이 없는 거야?"


여전히 멀뚱멀뚱한 표정이었다.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순간 내가 착각했나 싶었다. 중간고사로 제출된 이미지 2개를 차례로 화면에 띄웠다. 왼쪽은 오전반 학생, 오른쪽은 부정제출한 학생 이미지가 나란히 컴퓨터 화면에 떴다. 그 학생을 다시 봤다.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이 두 이미지가 너무 똑같지 않아? 네가 작업한 거 맞아?"


같은 시간대였으면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인지 애매했으니, 오전과 오후로 나뉜 수업이라 누가 먼저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여전히 그 학생의 태도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자기가 작업했고, 해상도가 어쩌고, 채도 조절이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순간 맥이 턱 하니 풀렸다. 자식 뻘인 학생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이 우습기도 하고, 눈앞에 떡 하니 증거가 있는데도 이렇게 말하는 태도는 뭔가 싶었다. 몇 번의 변명과 내 질문이 오가고 난 뒤 그 학생은 그제야 잘못했다고 시인했다. 나는 화를 내기보다 먼저 궁금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처음은 모든 학생의 결과물을 하나하나 화면에 띄웠을 때, 두 번 째는 수업을 마쳤을 때, 세 번 째는 내가 그에게 할 말이 없냐고 물었을 때, 마지막은 화면에 두 개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기회를 줬을 때.. 그 학생은 모든 기회를 발로 차 버렸다.


사람은 거짓말을 잘한다.

나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손쉽게 들킬만한 거짓말은 상대에 대한 무례다. 게다가 공정한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라면 더욱 문제고, 이것이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정직의 문제에서 이 젊은 청년에게 내가 애써 싫은 말을 하기 싫었다. 이 정도 수준의 거짓말을 하는 20살 넘은 청년에게 애써 감정을 쓰기 싫은 것을 내 이기심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큰 타격감이 없는 듯 자리로 돌아가서는 옆 친구들과 떠든다. 세대 차이인가. 이해하기 어렵다.


학점은 합리적으로 받을 것이다.

말로 하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 모든 것은 행동으로 표현되고 그에 맞는 결과를 받으면 된다. 현시대 젊은 청년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 이렇다면 그 잘못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20대일 때 나를 바라보던 기성세대의 시선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직 순수하고 열정적인 정직한 청년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다른 학생들과 만나는 수업이 있다. 부족하지만 뭔가 해보려고 하는 청년들에게는 무한 애정이 간다. 반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까지 쏟아부을 열정이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부족한 것은 정상이다. 의욕과 의지는 다르다. 그래서 세상이 불공평한 듯해도 공평하다. 청년들이여 명심하자. 본인들의 말과 행동이 기성세대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를. 예쁜 행동이든 못한 의도든 눈에 훤히 보인다.


정직한 청년을 응원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호호아줌마가 작아지는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