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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이름으로

통찰의 힘은 삶의 그릇을 키운다.

by 송기연

통찰에는 주로 '힘'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그래서 통찰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몸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근력운동을 해야 하듯이, 통찰을 하기 위해서도 어떤 연습이 필요하다. 그냥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통찰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으로 밝은 이성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예리한 관찰력만으로는 안된다. 현상만으로는 통찰력을 발휘할 수 없다. 관찰을 통해 드러난 사실을 둘러싼 전후 맥락과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말로는 쉽지만 이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통찰력이 필요한 순간은 매 삶의 순간순간 찾아온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그 정도는 아니라도 크고 작은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사물이나 현상을 환히 꿰뚫어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조리 전문가들은 어떤 음식이든 코로 맡고, 입에 넣으면 그 속에 들어간 재료나 요리법을 안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도 동일한 상황에서 그런 능력이 발휘될까? 삶의 어떤 순간에 제대로 된 통찰력이 필요할까?


우리는 통찰이 필요한 상황에 많이 맞닥뜨린다.

사람 간 관계부터,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순간, 선택과 판단의 순간이 늘 찾아온다. 통찰력은 이럴 때 힘을 발휘한다. 예리한 관찰은 피상적인 현상을 자세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너머 볼 수 있는 것은 맥락에 대한 분석일 것이다. 어떤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주위를 둘러싼 여러 정황을 알아야 한다. 이는 관찰뿐만 아니라 내용에 대한 분석과 생각의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크고 중요한 일에만 통찰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친구와의 관계나 사소한 언행, 가족 간의 크고 작은 갈등 등 의외로 통찰력이 필요한 순간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기본적인 통찰력이 있다면 새로운 사태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도 그 장면의 의미를 재조직화함으로써 갑작스럽게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할 수 있다. 통찰의 원리는 복잡한 형태를 띠지 않는다. 의외로 단순한 곳에 통찰의 힘이 있다. 스스로의 내면이 안정되는 것이 통찰의 힘을 키우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선택한다. 쇼츠를 보는 1시간은 빨리 지나가지만, 명상을 하는 10분의 시간은 길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통찰력의 출발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는 일이 많다.

어떤 상황에서 한 발자국 떨어지는 것은 어렵다. 메타인지라고 할 수 있고, 통찰력일 수 있다. 결국 우리 삶은 생로병사의 길을 가고 있다. 사소한 맥락적 환경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일한다. 하지만, 길고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생각인 진리에 다다른다. 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생각의 힘을 통해 저만의 통찰력을 키우고 사고를 발전시켰다. 치열한 삶을 사는 우리는 천재들의 사고법과 선각자의 생각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통찰의 힘은 삶에 대한 태도다.

국가, 사회, 종교, 삶, 죽음 등은 일생을 관통하는 통찰의 과정이다. 우리 모두는 삶을 살아가면서 통찰의 비를 맞는다. 하지만, 어떤 이는 소주잔만 한 통찰력을, 또 다른 이는 세숫대야만 한 통찰력을, 어떤 이는 물탱크처럼 큰 통찰력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두 공평하게 쏟아지는 통찰의 비를 담아내는 그릇이 다르다. 통창에 힘이 붙는 이유는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그릇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공부하고, 명상하고, 스스로를 다스리다 보면 그릇의 크기는 커진다. 아울러 여기에 내리는 통찰의 샘은 그릇을 더욱 키우게 된다. 삶에서 통찰이 필요한 순간은 지금도 이어진다. 우리는 내 안의 그릇을 돌아봐야 한다.


통찰력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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