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이 있어야 한다, 킥이
어제 특강을 다녀왔다.
모 여성인력개발센터 경단녀 15명이 대상이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웹디자인 양성과정“ 53일이 끝나는 마지막 커리큘럼의 일환으로 산업계 전문가를 초빙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외부특강 요청을 받으면 매번 체크하는 것이 있다. 실제 도움이 되는 강연을 위해 강의 목적, 대상자 특성 및 수준 등을 미리 알아본다. 이번 강연은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경단녀들의 포트폴리오 자문, 디자인계 트렌드, 취업 팁 등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회성 강연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대상자들의 눈높이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과정의 제목과는 다르게 주요 내용은 편집디자인이라고 했다. 그중 한 명의 포트폴리오를 미리 받아봤는데,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그분은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경력의 텀이 있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수준이었다.
유사한 콘셉트의 강연을 지난해에도 했었다.
당시 수강생들의 주된 목표는 창업이었던 것이 올해와의 차이라면 차이다. 강연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미리 도착해 있던 대상자들과 간단한 라포를 쌓았다. 모든 교육과정을 마치고, 다음날 최종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어떤 분의 결과물은 미리 출력을 해서 책상 위에 올려둔 것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강연을 시작하면서 알아보니 15명 중 3명이 디자인 전공자였다. 스스로는 손을 놓은 지 제법 됐다고 했지만 손의 감각과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역시 화두는 인공지능이었다.
디자인에도 불어닥친 인공지능은 현업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취업예정자에게도 최고의 이슈 거리였다. 문제는 교육과정을 진행하는 강사 역시 인공지능보다는 편집디자인에 더 포커스를 맞춘 듯했다. 교육과정의 제목이니 주요 인공지능 서비스를 조금씩은 다룬 것 같았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자인 간 경계나 영역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복잡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현업에 있다고 해서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들도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현업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은 인공지능 툴을 자유자재로 업무에 잘 활용할 것이라고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디자인 전문회사들의 상황은 이들의 현실과는 오히려 반대다. 신기한 툴이지만 현업에서는 생각만큼의 활용도는 낮은 실정이다. 강연 이외에 놀란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3명을 제외한 12명은 디자인과 무관한 타 전공자였다.
하지만 53일 간 교육을 통해 출력된 결과물에는 수준차이가 크지 않았다. 솔직히 좀 충격적이었다. 어도비 그래픽 툴도 최신버전을 사용 중이었다. 기획과 콘셉트는 챗지피티, 이미지는 미드저니로 작업한 결과물의 품질은 나쁘지 않았다. 전공은 했지만 실력이 평균보다 약간 낮은 학생 결과물을 보는 기분이었다. 강연 전날까지 지역 소상공인에게 디자인 서비스를 지원하고자 하는 수행기관(디자인 회사) 포트폴리오 백여 개를 보고 온 뒤라 생각은 더 복잡했다. 50여 일의 짧은 시간 내에 이런 품질을 낼 수 있다면 4년짜리 전공은 왜 해야 할까? 이게 다 기술발전에 의한 결과일까, 그렇다면 전공자는 확연히 다른 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문가 관점에서 보면 스킬의 차이는 보인다.
하지만, 세상은 필요한 적재적소가 있다. 미학적 수준의 디자인이 필요한 곳도 있고, 빠른 시간에 기능위주 디자인이 필요한 영역도 존재한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데 여러 방법이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컴퓨터, 모바일,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의 발전은 표현의 한계를 넘어 숙련의 정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료로 제공되는 다양한 디자인 템플릿은 이제 형식보다 콘텐츠의 품질을 더욱 바라보게 만든다. 그 차이를 넘어설 수 있으면 한 단계 높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이제 그야말로 무한경쟁의 시대다.
표현력이 중점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학부 1학년도 한 학기만 지나면 디자인툴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인공지능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오히려 아날로그적 발상과 기획에 무게중심이 옮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생각해 보면 하나의 힘이 커지면 다른 힘이 적어지는 현상은 늘 일어나는 일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표현력의 상향 평준화는 사고의 힘, 인문학의 중요도, 대화와 공감의 시대로 이끌 것이다. 디자인 전공자로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이 명확하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또한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래서 디자인이 예나 지금이나 어렵고 힘든 것이다.
그게 디자인의 매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