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미리 준비하는 치밀함
디자인 전공자는 취업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한다.
기본적인 이력사항(CV)과 함께 작업했던 결과물을 제시함으로써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을 증빙하는 용도다. 그래서 디자인 직종에서는 포트폴리오의 중요도는 상당하다. 모르는 누군가에게 짧은 시간 내에 업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용 못지않게 전략이 필요하다.
학부 전공자는 3학년 정도가 되면 포트폴리오는 준비하기 시작한다.
졸업학년이 되면 늦은 감이 있어 미리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 문제는 포트폴리오의 개념에 대한 인식이다. 1차적 관점에서 보면 포트폴리오는 작업했던 디자인 결과물의 집합체다. 학부 전공자라면 대개 졸업작품을 가장 앞에 배치한다. 재학 중 대외 공모전에서 수상한 이력이 있다면 배치 순서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대하는 디자인 전공자의 인식은 대개 유사하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포트폴리오는 취업을 위한 개인의 최소한 증명수단이다.
디자이너로서 영역별 전문성을 드러내는 것인데 학교(학과)가 함께 하는 졸업작품(집)과 취업을 위한 개인용 포트폴리오로 나눠볼 수 있다. 둘 다 중요도가 높은 만큼 기획부터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 졸업작품(집)의 경우, 매해마다 전체 콘셉트를 정하고 내용을 채운다. 학생들의 결과물은 학생만의 멋과 맛이 있다. 다소 서툴지만 도전적이고 과감해야 한다. 그 속에서 가능성을 보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이런 원리를 모르고 잔뜩 겉멋이 들어가거나, 유명 디자이너의 흉내를 내는 졸업작품(집)이나 전시회를 가끔 보게 된다. 안타까울 뿐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개인 포트폴리오다.
전체 졸업작품이나 전시회는 말 그대로 졸업을 위한 목적이다. 실기가 중요한 디자인 전공은 별도의 졸업논문을 대신한다. 2년 혹은 4년 동안 배우고 익힌 디자인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기회의 장인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개인 포트폴리오는 취업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졸업작품의 대상과는 달리 개인 포트폴리오의 대상은 명확하다. 회사의 인사담당이다. 그들의 생리를 알아야 효과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포트폴리오는 전혀 변별력이 없다. 어떻게 하면 경쟁자들과 대비해서 나를 어필하고, 취업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인가. 3가지 전략을 제시해 보겠다.
취업은 현실이다.
추상적인 콘셉트는 버려야 한다. 회사의 구성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과제다. 여기에는 기획부터 분석, 디자인 과정과 결과가 프로세스에 따라 아주 명확하게 구분되고, 단계별 디자인 고민과 결정이 정량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기성세대 흉내를 내는 것도 좋다. 특정한 회사를 목표로 한다면, 그 회사의 디자인 프로세스나 특성을 녹여서 표현하자. 다시 말하지만 취업은 개인의 취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회사)의 시스템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조사와 발상은 어떤 데이터 기반에서 정해지고 행해졌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여기에 정량적 개념(원가, 생산, 시장 데이터 등)이 들어가야 한다. 계속 말하지만 취업용 포트폴리오는 귀하의 작품 이미지를 감상하기 위한 도록이 아니다. 이력서의 이미지 버전이다.
두리뭉실한 콘셉트는 최악이다.
예를 들어, 친환경이나 지속가능 같은 키워드는 아주 좋은 개념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전제는 기업에 볼 때 애매하다. 친환경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우더라도 이후부터는 기업에서 선호하는 실용적 디자인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계속 반복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야 한다. 채용은 급여를 주고 회사의 이익을 위한 인원을 뽑는, 어찌 보면 검증되지 않은 모험을 하는 것이다. 최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
매번 하는 말이 있다.
인사권자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그 말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포트폴리오 내용 중 기업에서 선호할 만한 최고의 결과물을 뒤쪽에 배치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포트폴리오는 꼼꼼히 보는 사람은 세상에서 본인 하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보통은 표지에서 50% 이상의 선입견을 가지고 다음 장을 넘기게 되어 있다. 초반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나머지 포트폴리오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핵심을 숨기고 맨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나 반전 영화 전문감독의 몫이다. 취업을 위해 작성하는 포트폴리오라면 첫 페이지부터 강한 인상을 줘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표지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취업은 선택을 받는 행위다.
내가 취업하고 싶은 회사를 선택하는 것 같지만, 결과는 선택을 받아야 하지 않은가?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는 곳일수록 경쟁률이 높은 것이 그 증표다. 포트폴리오는 이력서 글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있다. 회사는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그런 가능성은 대동소이한 글자의 나열에서는 알아채기 힘들다. 포트폴리오는 표지부터 가장 강력하게 나를 알리는 것이다. 표지 다음에 인덱스를 넣고, 본인 사진과 이름, 주소, 몇 가지 안 되는 자격증을 넣는 것은 페이지 낭비다. 인적사항 정보는 다른 서류에 다 나와 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위에서 말한 두관식 구성과 연계되는 얘기다. 회사는 저마다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그래서 각자의 포트폴리오 구성은 어떤 결과물이 앞에 가고, 어떤 결과물이 뒤에 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친환경의 예를 다시 들면, 대량생산을 통한 품질 기반 회사라면 '친환경' 디자인 포트폴리오는 나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당연히 구직자에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는데, 클래식 음악 얘기를 맨 처음 꺼낸다면 그 자리는 이후 서먹해지지 않겠는가? 취업은 내가 을의 입장에서 갑의 선택을 구하는 과정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 포트폴리오는 카탈로그식이 되어야 한다.
주제를 나눠서 정리하자.
예를 들어 친환경, ESG, 이동수단, 공공, UI/X, PSSD, CPTED, 아이덴티티, AI, 생활용품, 시니어 등 여러 가지 카테고리의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포트폴리오는 제출할 때 해당 회사의 성격에 따라 매 번 다른 순서를 정할 수 있다. 공공 성격의 기관이라면 ESG, 친환경, CPTED 정도가 앞에 배치되고, 나머지는 그 외 결과물 모음으로 나눠질 수 있다. 상업적 성격의 회사라면 경우에 따라 PSSD, UI/X, 아이덴티티나 마케팅이 앞에 배치되고, 관심 없어 보일듯한 나머지 결과물은 뒤로 보낸다. 중요도에 따라 표지 디자인도 달라져야 한다. 한 가지 페이지 구성으로 된 천편일률적인 포트폴리오는 전략적이지 않다.
포트폴리오는 취업을 위한 좋은 수단이다.
때로는 결과물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흔하게 경험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예비 디자이너들은 포트폴리오를 최대한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상대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입장을 바꿔서 그들의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하자. 위에서 제시한 3가지는 아주 최소한이다. 가능한 여유가 있을 때 하나씩 준비하는 것이 급하게 서두르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치밀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