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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은 T, 공감능력은 F

공감 없는 문제해결은 공허하다.

by 송기연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 중 맨 앞 단계는 '공감하기'이다.

디자인의 목표가 오로지 문제해결이라면 번거롭게 공감 같은 것을 할 이유는 없다. 프로세스 단계만 하나 더 늘어날 뿐이다.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빠르고 객관적이어서, 효율적인 대안을 만들어 내기 유리하다. 하지만 여러 디자인 개발을 경험해보면 알 수 있다. 문제에 대해 공감을 하고 시작하는 것과 공감 없이 진행하는 것은 과정과 결과에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바쁘고 여유가 없을 때는 문제해결에만 집중했었다.

주어진 문제를 빨리 해결해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다른 일을 해야 했다. 미드 CSI처럼 한 가지 사건에만 집중한다면 일을 더 잘할 수 있겠는데, 일이라는 것이 보통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빨리빨리가 중요한 덕목이었다. 지금도 그런 상황에서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공감하기는 프로젝트의 퀄리티를 높이고, 빠른 마무리를 위한 효과적인 단계며 기술이 되었다. 공감하기와 이해하기는 유사한 개념이다. 공감하기는 디자인씽킹에서, 이해하기는 서비스디자인에서 주로 사용되지만 큰 틀에서는 같다. 공감이나 이해의 대상은 해당 문제, 이해관계자, 주변 상황 등이다. 이 단계를 거치는 데는 크게 비용이 발생하거나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전체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면서 이 단계 역시 진화하고 발전 중이다.


초기 공공디자인의 지상과제는 오로지 문제해결이었다.

문제는 Barrier로 '장벽'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문제해결을 Barrier Free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장벽(Barrier)때문에 불편하거나 개선인 필요한 상황을 문제로 정의하고, 이를 없앤 상태(Free)를 위해 디자인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하지만 아주 강력한 힘이다. 예를 들어, 높고 가파른 계단은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에게는 큰 문제(Barrier)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든다. 그러면 기존의 장벽(Barrier)이 없어지면서(Free) 문제가 해결된다. 문제가 깔끔하게 해소된 것이다. 여기에 '장애 및 노약자용'이라고 큰 글씨까지 적으면 눈에도 잘 띄고 더욱 좋다. 장애 및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는 장애 및 노약자 전용이 된다. 문제를 하나 해결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경우다. 이 시설을 이용하면 안 될 것 같은 젊고, 정상신체를 가진 청년도 몸이 아프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수 있다. 걷기 싫어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도 있을 수 있고, 장애는 아니라도 생전 처음 깁스를 한 20대 청년도 있을 것이다. 모두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기존 '문제해결'관점에 '공감'을 더하면 관점이 달라진다. 계단을 대신하는 엘리베이터는 장애 및 노약자 전용이 아닌 모두를 위한 시설이 된다. 장애 및 노약자용이라고 쓴 글씨와 픽토그램은 장애 및 노약자 우선사용으로 바뀌면서 모두를 위한 엘리베이터로 새롭게 태어난다.


'공감'은 다분히 정성적인 단어다.

글자 자체에서 오는 뉘앙스 때문인지, 명확하게 어떤 행동을 수행해야 하는 지침이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 단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 대문자 T 성향의 경상도 아저씨 관점에서는 '공감' 보다는 '맥락분석' 정도가 어떨까 싶다. 프로젝트에 대한 빠른 진행과 의사결정은 주변 정보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되어야 한다. 문제와 관련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린다. 관찰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도 파악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맥락적 사고는 이런 기반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공감하기는 문제해결을 위한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다.


디자인이 당면한 목표가 완벽한 문제해결이 아닐 수 있다.

해답이 의외의 영역에서도 도출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목도했다. 디자인의 매력은 멋지고 화려한 결과 못지않게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문제해결을 T라고 하면, 공감능력은 F 쯤 되겠다. T만으로, F만으로는 목표한 문제해결 성과를 달성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T적 사고와 F적 사고를 배분해야 한다. 사람의 mbti 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F 성향과 극단적 T 성향은 비율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공감이 없는 문제해결은 공허하다. 문제만 해결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돈만 있다고 반드시 삶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다만 내 관점에서는 그래도 문제해결 능력(T)이 우선이다. 하지만 공감능력(F)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둘의 적절한 하모니가 이루어질 때 디자인은 문제해결자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해서 강조한다.


공감 없는 문제해결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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