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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by 송기연

때로는 현실이 지옥 같다.

여러 문제가 삶을 어렵게 만들고, 온전히 고통만 남은듯한 상태를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한다. 그게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믿었던 관계에 대한 배신일 수 있다. 혹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것은 본인이나 가까운 가족이나 삶에는 큰 일이다. 젊은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현실을 어렵게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군에 입대한 청년들이 겪어야 하는 힘든 군대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더디게만 흘러간다. 힘들고 지친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간다.

열렬히 뜨거웠던 첫사랑의 기억도 옅어지고, 숨 막히던 현실의 고통도 조금씩 무뎌진다. 지옥 같은 고통을 그냥 버텨내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고통보다 힘든 것은 희망 없는 내일이다. 어릴 때 줄에 묶인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줄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삶의 무게를 벗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나의 삶은 여기 있고, 나의 시간은 지금도 흘러간다. 개인파산이나 회생을 진행 중인 사람이 주위에 가끔 있다. 회생결정 후에는 약 5년 정도 회복기간이 있다. 회생 전에는 어두웠던 표정이 회생 기간이 시작되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조금씩 희망의 싹이 보이고 기간이 지나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엄마한테 혼나면 도망을 가곤 한다.

우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본능일 수 있다. 하지만 엄마의 화는 그런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잠시 시간을 미룬 것일 뿐. 오히려 일을 크게 만들 수도 있다. 현실도피를 하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에게 있다. 내 생각에는 그래서 여행을 가면 즐겁지 않을까? 여행지는 나의 일상과는 완벽히 격리된 곳이다. 거기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복잡한 인간관계도 없으며, 잠시나마 일상의 자잘한 고민거리를 떠나 좋은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이 허락되었다. 고통은 상대적이다. 나의 힘든 고민거리는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해야 할 일, 복잡한 일, 걱정되는 일 등도 나에게서 떠나면 그 강도는 확연히 줄어든다. 엄마한테 도망친 어린아이처럼 우리 삶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나의 일상에 그대로 녹아 있다. 애써 외면한다고 해도 잠시 눈에서만 멀어졌을 뿐, 가느다랗게 실눈으로 보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인생의 도피처는 있다.

일과 사랑, 삶의 모든 고민에서 떠난다는 것은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의미다. 영원한 도피처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현실의 고통과 고민을 맞닥뜨려야 한다. 아무런 고민과 어려움이 없는 파라다이스는 없다. 천국이 있다면 거기에도 현실과 비슷한 어려움이 또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천국은 지금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옥의 반대가 천국이라면 현실은 지옥과 천국이 공존한다. 현실이 지옥 같다면, 어느 한 곳은 천국 같은 곳이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천국을 동경한다. 적어도 천국이 있다고 해도 도망친 곳에는 없을 것이다.


천국의 인구밀도가 그렇게 높을 리가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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