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답은 나와 있다.
심사위원을 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여러 사업 결과물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큰 흐름과 각각의 장단점을 알 수 있는 점, 잘된 사례와 부족한 사례의 패턴을 보는 것, 다른 심사위원들의 성향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은 도드라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지난 정부에서 예산이 많이 깎인 탓에 과제 종료일이 급하게 당겨졌다. 특별교부세가 없어지니 자체 예산이 없던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는 규모를 축소시켰다. 그래서 경험 많은 소수의 디자이너들이 여러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거나 급하게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정리된 사업이 많았다. 이는 사업 전체를 보는 관점에서는 현재 사업의 한계와 개선점이 오히려 잘 보이는 효과가 되기도 했다.
사람이 하는 심사는 완벽하지 않다.
정량적 수치가 명확한 사업이 아니라면, 정해진 심사기준이 있더라도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은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여러 심사위원의 종합점수를 계산해서 종합하면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2~3일 안에 살펴봐야 할 평가대상은 약 4~50개가 된다. 늘 처음 평가대상이 되는 기관이나 단체는 제법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하지만 한 가지 사업에 유사한 주제들이 반복해서 나오고 주관기관에서 배포하는 공통 양식이 있으면 문서의 흐름은 대동소이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 평가가 진행되면 유사한 패턴이 보이고, 정량점수를 줘야 하는 항목이 눈에 크게 들어오는 경험을 한다. 매년 심사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패턴이다.
공공서비스디자인은 정책 수혜자인 국민을 위한 것이다.
좋은 프로세스와 경험 많은 디자이너와 함께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 자체도 좋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그에 합당한 사후 평가가 이어지면 더욱 좋다. 그렇게 보면 일단 서류평가에서 예선 통과를 해야 한다. 서류형식은 공통적으로 정해져 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채워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보직이 바뀌지 않아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조금 수월하겠지만 처음 맡는 업무라면 막막할 뿐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배포한 문서는 일반 행정양식과 다르며, 단순히 활동을 기록하는 차원이 아니라 서비스디자인 각 단계마다 느끼는 점, 찾아낸 인사이트, 또한 몇 가지 실행방법, 진행과정, 결과에 대한 의미 분석이 함께 따라야 한다. 거기에 그래픽 작업 같은 것도 필요해 보인다.
심사위원의 관점에서는 핵심만 보게 된다.
평가표에서 척도별로 나눈 항목에 대해 내리는 정성평가는 한눈에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마인드셋을 살펴보자. 서류작성의 주체는 공무원이다. 서비스디자이너, 관련분야 전문가는 서류작성에 콘텐츠를 제작하고 지원한다. 특히 서비스디자이너는 그래픽 툴을 잘 다루는 역량이 크니 협업이 중요하다. 항목을 하나씩 살펴보자.
올해 기준, 전체 심사항목은 크게 3개 영역으로 구분된다.
추진적합성(15점), 활동과정 충실도(45점), 성과 및 확산성(40점)이다. 활동을 얼마나 충실하게 했느냐가 45점으로 가장 배점항목이 크다. 이후 간과하기 쉬운 성과 및 확산성도 거의 대등한 수준의 배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활동과정과 충실도는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큰 변별력이 없다. 추진적합성 역시 15점으로 그리 크지 않다. 다른 프로젝트와의 차별성은 성과 및 확산성에서 승부를 거는 것이다.
1. 추진적합성(15점)
이것은 다시 문제정의 및 목표설정(10점)과 추진환경(5점)으로 나뉜다. 문제정의는 공공서비스디자인 과제의 성격이다. 문제, 문제, 문제가 문제다에서 밝혔듯이 분명하게 공공서비스디자인 문제는 우선순위가 있다. 그 문제의 성격을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 공감하는 규모, 해당 지역(분야)에서 절실한 정도가 여기 해당된다. 이후 추진환경은 국민디자인단 구성에 전문 서비스디자이너가 있는가와 정책 수요자과 공급자, 분야별 전문가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포진하고 있느냐다. 이것은 기관의 적극성과도 연관되는 상황이다.
2. 활동과정 충실도(45점)
가장 배점이 높다. 이것은 협업 및 성실성(15점)과 활동의 합목적성(30점)으로 나뉜다. 개별 세부항목 중 가장 큰 활동의 합목적성은 추진과정에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를 단계별로 잘 수행했느냐를 평가한다.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가 아니라고 해도 다양한 방법으로 현안해결의 뜻은 모을 수 있다. 하지만, 본 과제는 공공영역에 서비스디자인을 접목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인된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를 단계마다 잘 수행하고 단계 별 인사이트와 진행상황을 글, 표, 그림 등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아주 중요하다. 배점을 보시라. 협업 및 성실성은 국민디자인단 활동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했느냐를 보는 것이다. 즉, 회의 횟수와 현장 방문 횟수 등 숫자로 측정할 수 있다. 회의 숫자가 많다는 것은 숙의를 거쳤다는 것이고, 도출된 결과에는 정당성과 공신력을 얻게 된다.
3. 성과 및 확산성(40점)
이것은 혁신성 및 실효성(20점)과 확산 및 지속가능성(20점)으로 나뉜다. 정책의 혁신성과 실효성, 수요자의 수용성을 나누는데 이것은 도출된 공공서비스 정책안이 기존 정책과 비교해서 우위를 가지는지를 본다. 또한 본격적으로 정책이 실현될 때 기대되는 사업효과도 큰 비중이 있다. 이런 것은 혁신 담당부서와 연계되는 주요 사업부서의 의견이 중요하다. 연말까지 가는 과제라면 최종결과를 작성하기 전에 프로토타입이나 MVP를 시행하고 난 뒤의 반응도 포함할 수 있다. 확산 및 지속가능성은 사실 이 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기존 행정정책을 입안하고 기획하는 과정에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를 접목해서 더 좋은 결과를 내면, 다른 사업, 다른 지역에서도 이 기법을 쓰는 선순환에 대한 가능성 정도가 이 항목이 묻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단일 사업으로 한 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예산이 배분되고 인력이 충원되어 지속가능성을 가질 확률이 어느 정도냐를 묻는다. 확산과 지속가능성이 이 사업의 근원적 목표며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모든 생각과 행동과 말은 글로 표현된다.
혹시 조금 더 빠른 이해나 공감을 위해서는 표나 그림을 더하기도 한다. 서류 속 글에는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 자음과 모음으로 된 글자를 통해 그간 활동과 의도, 노력, 미래를 가늠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 항목은 회의했던 숫자. 구성원 명단의 수, 활동을 나타내는 템플릿을 채우는 글과 그림 만으로 평가해야 한다. 어찌 보면 복잡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평가기준이 명확할수록 평가는 쉬워진다. 소수의 사람이 이 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다. 디자이너에게는 프로젝트 수행 후 남는 포트폴리오가, 공무원에게는 수행 후 포상이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기준에 맞게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런 문서는 프로젝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부지런한 습관을 가지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거 하나.
좋은 평가를 받은 받은 보고서와 사업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면 좋다.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기관, 디자이너, 주제, 협력체계 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 간 신뢰형성도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내용의 구체적 방법은 상황이 되면 워크시트 형태로 한 번 만들어보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사업은 좋지 않은데 보고서만 좋을 수 없다. 좋은 사업이 우선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방법론은 좋은 사업이 그에 부합하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좋은 논문은 좋은 연구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해야 하는 싫은 숙제가 아닌 것에서 첫출발이 되어야 한다.
이미 답은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