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말과 행위를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비평은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등을 분석하여 가치를 논하는 것이다.
그럼 디자인 비평은 디자인에 대한 여러 평가 및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특정한 기준 등에 기반하여 분석, 평가, 판단, 감상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건 왜 필요할까?
디자인은 대중을 위한 행위다.
그렇기에 어떤 디자인이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 말은 즉, 모든 디자인은 평가 및 비평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은 옳지 않은가. 이것은 시대에 따라 문화나 종교, 율법 등에 의해 조금씩 변해왔다. 과학적 진리와는 다르게 선악에 대한 판단의 몫은 종교가 담당했다. 이후 도덕적 양심도 기준이 되는 보편성을 함께 보인다. 디자인은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이다. 어떤 디자인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디자인에 대한 판단기준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것은 타당한가의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다.
디자인은 크게 기능주의와 미학주의로 나뉜다.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독일식 기능주의는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했다. 미니멀 디자인, 심플한 디자인은 제조업 입장에서 볼 때 아름다운 가치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기업입장에서는 가장 최선의 결과다. 현재도 무분별한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 무분별한 소비 등은 지속적으로 미니멀한 디자인에 대해 높은 가치를 주고 있다. 기능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흐름은 전쟁 이후 자연스러운 인류사의 흐름 속에 추구되고 있다. 여전히 높은 디자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미학주의는 특정한 문화권에서 발전했다.
이탈리아는 특히 전통산업 못지않게 첨단산업도 함께 발전했다. 하지만 디자인에서는 문화적 전통에 따라 예전 길드와 수공업을 버리지 않았다. 이른바 명품으로 불리는 패션산업의 중심지로서 첨단 산업과 함께 전통산업의 뚜렷한 구분은 어느 것이 우선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디자인 비평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역시 급격한 산업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치열한 기능주의를 추구했다. 하지만 기능주의 디자인은 현재 어떤 큰 벽 같은 것에 닿아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은 디자이너들이 표현해 내던 다양하고 숙련될 기술을 순식간에 재현해 내고 있다. 만약 사회나 기술의 발전을 차치하고 끊임없이 극단의 기능주의 디자인만을 추구한다면 디자인 전체주의가 되지 않을까. 디자인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는 기능주의가 최선의 가치였지만 지금은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디자인 비평은 또한 표현의 영역이다.
다양한 생각과 기준, 철학은 마음과 머릿속에 있다. 이런 복잡한 생각과 의견을 겉으로 잘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글과 말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형식과 과정을 통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디자이너가 갖추고 있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특히, 인공지능 같은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디자이너들 간 변별력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개인 디자이너가 드러날 수 있는 점을 찾기 어렵다. 더욱더 디자이너의 글쓰기가 비평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글로 잘 표현할 수 있을 때 철학이 정리되고, 비평이 객관화될 수 있으며 디자이너의 개성은 살아날 것이다.
디자인 비평은 글쓰기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