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글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생각은 힘이 세다.
하지만 생각의 힘은 그것을 잘 조절할 수 있을 때 더욱 커진다. 생각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중구난방의 형태로 뒤엉켜 있다. 사실과 감정, 추론과 진실, 문맥과 시제 등이 아무런 정렬 없이 혼재한다.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유사한 개념 중 최적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후에는 문장의 형태로 앞뒤 나열을 하고 덩어리 짓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한두 번의 연습으로는 부족하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반복이 가장 빠른 길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리된 생각은 입을 통해 말로 나오거나 손을 통해 글의 형태가 된다. 가장 정리된 최후의 매체는 문자 텍스트다.
디자이너도 생각을 많이 한다.
일을 할 때마다 다양한 생각의 힘을 빌리게 된다.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관계를 알아보고, 현상을 추론한다.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지나온 과정을 반추하는 것은 물론, 새롭게 입력되는 정보도 처리해야 한다. 하나의 디자인 결정과정에 다다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대부분의 의사결정 과정의 근거는 생각이다. 하지만 여러 생각이 겹치거나 중복되고, 생각의 깊이가 서로 다르다면 인간뇌의 처리능력은 금방 한계에 다다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글이다.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통해 의사를 명확히 할 수 있다. 글이 가진 능력과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세다.
생각, 말, 글.
이 순서는 정리의 힘이 큰 차례다. 일단 생각이 풍부해야 말로 정리되고, 혹은 글로 마무리된다. 생각의 양이 적다면 다음 단계는 뭐 말하나 마나다. 지금은 이 생각의 용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생각이 없어지면 때론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다. 복잡한 일부터 사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된다. 모두 발전한 첨단기술과 도구, 환경, 사회 시스템 덕분이다. 아니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뇌도 쓰지 않으면 자연스레 퇴화한다. 굳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신체 기능에는 자연스럽게 에너지 배분을 줄이는 것이 효율적인 생명체 유지논리의 핵심 아니겠는가. AI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보다 사람이 게으르게 되고, 보다 나태해지는 디스토피아를 인공지능이 앞당기고 있다.
생각만으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있을까?
혹시 모른다. 사람의 뇌에 뭔가 장치를 부착해서 놀라운 일을 해내는 상상과 영화는 조금씩 현실이 되어간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현실에서는 생각만으로는 그 어떤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생각도 훈련의 대상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비평적 사고를 가지고 온갖 생각을 해봐야 한다. 때론 비현실적이거나 현재 문화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것도 타인의 생각에 이입되어보기도 하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내야 한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이런 행위는 모두 헛된 공상이 된다. 가장 현실적으로 빠르게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글쓰기다.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은 의외로 힘든 일이다. 우리는 모국어를 기반으로 생각한다. 우리말은 주어가 오고 동사가 가장 마지막에 자리한다. 생각이 글로 현화될 때, 다음 단계를 진행해야 한다. 문법 규칙에 맞으면서 내용은 확실한 전달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한 몇 가지 훈련이 있다. 이런 문장이 모여서 문단이 되고 문단이 모이면 하나의 책이 된다.
생각은 글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글을 쓰는 행위는 생각을 살리고 보존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하나의 뚜렷한 장점이 또 있다. 바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같은 지, 어떻게 다른 지를 아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서로의 머릿속을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설사 머릿속을 들어간다고 해도 어떻게 알겠는가). 생각의 힘은 곧 글의 힘이다. 어떤 글은 길지 않아도 강하고 울림이 있다. 반명 어떤 글은 길고 장황해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글은 편차가 크다. 우리는 초능력자가 아니기에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생각을 글로 남겨야 한다. 생각이 글이 되는 과정 중에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된다. 여기에 논리성과 문맥, 문법에 맞는 설득력 있는 글을 쓰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 역시 하나로 해결할 수 있으니, 그것도 역시 '글쓰기'다. 이쯤 되면 글쓰기가 무슨 만능같이 보일 수 있다. 잘 봤다. 글쓰기는 만능이다. 모든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는 영장류를 보라. 생각을 글로 써서 남기고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족에게는 엄청난 축복이다. 글의 결론은 이거다. 글을 쓰자. 생각을 아무리 깊게 하고 늘 생각에 잠긴다고 하더라도 입증하거나 사고력이 커지기를 원한다는 두 말하지 말고 글로 남기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생각은 글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