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의 적응

by 송기연

인간은 쾌락의 동물이다.

추구하는 종류도 단순한 감각적 쾌락에서 높은 수준의 인지적 쾌락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고, 첫눈에 이성에게 반하는 일은 흔히 일상적인 삶의 일부분이다. 쾌락이 지나쳐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술, 이성, 도박, 마약 등 세상의 안 좋은 것은 다 중독의 대상이다. 반대로 세상의 좋은 것도 마찬가지다. 사랑, 행복, 안정, 의리 등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감정은 어느새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1년밖에 되지 않은 스마트폰의 화질이 괜히 나빠 보이고, 첫눈에 반했던 연인과의 관계는 뜨거웠던 사랑보다는 의리에 가까워진다. 왜 우리는 이런 감정에 쉽게 익숙해지는 것일까?






내 스마트폰은 아이폰 13프로맥스다.

엊그제 발표된 신제품에 비하면 이제는 케이스나 액세서리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은 뒷면의 보호필름이 달아난 지 오래다. 전면의 유리액정 보호필름은 재고가 아직 3장 정도 남았지만 애써 애지중지하는 마음은 사라졌다. 스마트폰 입장이 되어 본다면 아주 섭섭한 마음이 들 것이다.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은 뇌에 있다. 우리 뇌가 적응에 최적화되어 있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쾌락 적응.

새로운 자극에 대한 쾌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다행 아닌가. 내가 이상한 인간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위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복권 당첨자, 사고 피해자 모두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수준으로 돌아오는 것도 이런 현상의 사례로 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결혼식장에 입장하던 기억처럼 좋았던 것은 물론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직간접적으로 생명의 위협에 준하는 공포를 느꼈던 모든 극한 순간들이 지금은 무뎌졌다. 사회적 참사나 세계적인 재난을 경험하고서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 유사한 감정을 겪는다. 쾌락으로 표현되었지만 뇌를 자극하는 강렬한 경험의 기억으로 표현을 대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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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수준의 자극은 삶의 활력이 된다.

절제하고 조절가능한 종류의 쾌락은 전체 인생에서는 쉼표나 느낌표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정도를 벗어날 때 문제가 된다. 우리 뇌는 철저히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절제할 수 없을 정도의 자극이 외부에서 들어와서 뇌가 컨트롤 타워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산업계는 이런 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자극적인 광고, 프로모션 등을 통해 제품의 구매를 유도하고 소비를 촉진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갑을 열고, 해당 브랜드를 소비한다. 디자인은 거기에 일정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소비에 있어 쾌락은 구매결정을 하는 순간, 구매를 하는 행위를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처음으로 소유할 때 가장 높은 수치를 갖는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히 외부자극에 의한 쾌락은 상승폭만큼 떨어지는 속도도 빠르다. 자극에 빈번히 노출되는 경험은 우리 뇌가 가진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필요 없는 제품을 구매하고, 경제적 수준을 넘어서는 소비를 유도하는 사회적 현상은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 여기에 소셜미디어를 통한 감정의 확산 등은 경계해야 한다.




익숙함은 안정적이다.

새로움이 주는 쾌감보다 크지 않지만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익숙함은 감각이 둔해진 현상이 아니다. 스마트폰 자체가 주는 쾌감은 줄어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식을 전하고, 하루를 정리하며 원하는 정보를 얻는다. 자극은 줄어도 의미는 오히려 쌓여간다. 결국 우리 삶에는 처음의 쾌락이 줄어들면서, 익숙함이 자리 잡는다. 강한 쾌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진짜 강한 것만이 우리 곁에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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