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발상의 경계는 어디인가?

by 송기연

창의적 발상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일반적인 생각에 비해 뭔가 획기적으로 좋은 기발함이 필요할 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단순히 생각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경험, 그리고 뇌의 훈련 같은 것이 목적이라면 어떤 결과가 나오면 어떤가. 머리 3개 달린 사람이나 말도 안 되는 초능력을 가진 강아지나 그 어떤 것이 돼도 문제없지 않을까. 원래 혁신에 가까울 정도의 아이디어는 처음 접했을 때 말도 안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획기적인 생각은 서로 모순된다.

자유도가 높은 순수예술 분야라면 모를까, 디자인은 대부분 어느 정도는 실현가능성을 둔 아이디어에 가치를 둔다. 현재 기술이나 인식으로는 요원한 수준의 창의적 생각은 공모전 콘셉트 부분에 한정된 생각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나 발상을 통해 어떤 영감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아무리 괘씸한 형식의 발상도 모두 오케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창의적 발상"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현실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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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상력의 한계를 알고 싶을 수도 있다.

산업이나 현실을 떠나서 그야말로 상상의 나라로 가든, 안드로메다로 가든 뻗어나갈 수 있는 최고지점까지 가서 어떤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이 눈치 보여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떤 경계를 만들어서 생각의 가지를 한정한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이라는 말이 있다. 평소에 훈련을 그런 식으로 한다면 정말 적적한 수준의 창의력이 필요할 때에는 거의 창의적 발상을 하지 못한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범주의 발상에 '창의적'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때론, 경계가 없고 조건 없는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 같은 창의성 훈련도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창의적 발상법은 세상에 많이 있다.

그것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든 존재나 개념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방법론이란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애써 스스로의 시선을 외면한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누군가의 허무맹랑한 발상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이 되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 역시, 우주를 향해 날아가서 달에 가보는 것 역시 모두 비슷했다. 인류는 이렇게 허무맹랑한 수준의 상상을 현실로 끌어내리면서 발전하고 있다.


디자인은 창의적 산업분야의 대표주자다.

그리고 디자인 외에도 창의적 발상이 중요한 능력으로 요구되는 직종이나 직업은 세상에 널려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창의적이지 않은 분야가 어디 있겠는가.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리얼월드 속에서 창의적인 발상은 많은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지속되어야 하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전쟁, 혁명, 사회변화, 정치 등 많은 분야의 실질적 발전의 기초에는 누군가의 창의적인 상상이 있었다.


창의적 발상의 한계는 없다.

누군가는 그 한계를 여기라고, 저기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는 아무도 과거 그의 발상을 탓하지 않는다. 호모사피엔스는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 창의적 발상이 현실적 조건에 한정된다면 그건 더 이상 창의적이라는 성격을 규정하기 어렵다. 단지, 기발한 수준의 아이디어일 뿐이다. 창의적 발상은 앞으로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풍부한 상상력을 현실화시켜주는 엔진이다.


창의성에 경계를 지우는 순간, 우리의 여정은 멈추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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