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시대 디자이너 경험의 중요성

by 송기연

디자이너에게 아이디어는 중요한 개념이다.

직업적으로는 매번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많은 조건이 붙는 것이 정상이다. 현실에서의 디자인은 많은 제약조건에서 진행된다. 눈에 보이는 조건과 그렇지 않은 것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수많은 조건을 얼마나 많이 파악한 상태에서 진행하느냐에 따라 디자이너의 관록이 돋보이기도 한다. 모든 경영 의사결정, 디자인 결정 역시 마찬가지다.


디자인에서 제약조건이 거의 없는 영역도 있는데, 바로 공모전이다.

큰 주제 정도만 주어지고 나머지는 창작자의 무한한 상상이 허용된다. 그야말로, 창의성 대전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디자이너의 결과물이 얼마나 창의적인지는 그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 공부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발상(아이디어라는 표현은 좀 피상적이다)이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스킬도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변했다. 아이디어 창출의 원천이 되는 경험과 공부, 그것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손쉽게 대체되어 버렸다. 이제 경력, 경험, 학위, 자격여부로는 더 이상 변별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디자이너는 어떻게 해야 할까? 디자이너 개인이 갖는 아이디어의 창의성은 가치를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이런 현상은 앞으로 가속화될 것이 자명하다.


인공지능시대는 디자이너에게 좌절을 심어주고 있다.

수십 년 간의 경험보다는 인공지능이 내놓는 결과물이 더욱 화려하고 창의적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명분 역시 논리의 빈틈을 찾아볼 수 없다. 반드시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이면 글, 그림이면 그림, 그보다 더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영역에서 매일매일 놀라움을 갱신하고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함께 존재하는 법이다. 이럴 때 새로운 디자이너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어떤 식으로든 입력값이 필요하다.

단순히 몇 가지 단어로 조합된 키워드일 수도 있고, 장황한 배경설명일수도 있다. 부족한 부분은 인공지능이 알아서 메꿀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평이할 것이다. 디자이너가 전문가로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면 깊이에서 차이가 난다. 결과물의 무한수정과 확장, 즉 디테일에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도드라질 것이다. 도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었을 뿐이지 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늘 존재했다. 이럴수록 개인의 경험은 더욱더 중요한 변별요소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초등학생이나 대학생, 10년 차 디자이너는 삶의 경험이 다르다. 동일한 툴을 사용한다고 해도 일정 수준 이상 디테일로 들어가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른다. 여기에서 전문성이 발휘된다. 즉, 진짜 승부는 피상적인 면에 있는 것이 아닌 저 깊이에 존재하고 있다. 그 깊이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그만둔다면 전문가로서 변별력이 없다. 오히려, 그 어떤 지점부터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확실히 날 것이다. 그곳까지 갈 수 있는 힘, 그곳을 지나쳐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앞으로 디자이너의 숙제가 아닐까.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아이디어는 이렇게 또 한 단계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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