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멘토 전성시대

스승, 그 무거운 책임감

by 송기연

디자인을 할 때 누군가에게서 배웁니다. 교수, 선생, 강사, 선배, 친구 같은 사람들 혹은 책, 논문, 보고서, 결과물에서도 배웁니다.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관찰, 대화, 행동, 사색과 고민 등 다양한 곳에도 배움은 있습니다. 예전에 디자인 실력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곧 묘사력이었습니다. 얼마나 실제처럼 빨리 그려내느냐 하는 기능적인 부분이 대다수여서, 능력의 비교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디자인 능력에 대한 관점이 다양해지면서 예전처럼 단순한 몇 가지 숙련기능보다는 더 넓고 더 깊은 과정을 거쳐야 누가 누구보다 뛰어나거나 좋은 디자이너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그 구분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누가 누구보다 기능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량을 위, 아래로 나누지 못합니다. 독일의 도제식 교육이 각광받는 시기도 있었고, 지금도 분야의 특성상 요긴하게 적용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전문가로서 경험과 식견을 인정받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깊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습성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 무협영화를 보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부 밑에서 가공할만한 무술 수련 전에 기초체력단련이라는 명목으로 일을 시키는 스토리를 많이 접했습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처럼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동일시되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다양한 배움의 루트가 존재하니, 경제원칙으로 본다면 희소성이 떨어진 시대에는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예전만큼 멘토나 스승이 갖는 단어의 무게감이 가벼워진 경향은 있습니다. 또한, 한 두 번의 컨설팅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디자인 전문가라는 표현 대신,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표현인 '멘토'라는 호칭을 듣는 것은 분명 과하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몇몇 선생이나 교수들은 스스로를 "스승"으로 불리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물론, 스승이라는 단어에 부합되는 훌륭한 인품과 그에 맞는 실력을 두루 겸비한 분들도 계십니다. 그에 비해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회사에서도 선임자가 스승으로 대우받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멘토보다는 스승이란 표현 둘 다 좀 더 철저한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단어는 여러 의미를 포함합니다. '제자'라는 말과 호환이 되면서 댓 구를 이루는데, 이는 자칫 잘못된 관행을 가져올 수 있어서, 누가 누구에게 스승(멘토)이 되려면 아래의 조건들이 구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되는 분이 계시다면 본인만의 조건을 한 번 생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1. 연령차이

스승(멘토)은 해당분야 전문성 못지않게 그의 인생관도 닮고 싶은 존경심이 함께 포함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처럼 믿고 따른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굳이 숫자로 따진다면 부모와 자식 정도가 될 수 있는 최소한 20년 정도의 차이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스승의 위치가 될 만하다면 적어도 한 평생을 해당 분야에 종사하면서 계속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전문성 못지않은 인생도 조금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 여부는 중요한 요건은 아닙니다. 워너비가 되는 데에는 실력과 성과도 중요하지만, 살아온 삶의 궤적이 따라가고 싶은 지침으로 보여야 합니다. 몇 년 차이 나지 않은 분들은 스승(멘토)보다는 훌륭한 선배 정도의 자리가 어울립니다.


2. 상상하기

내 입장을 스승(멘토)에게 비추어 상상하는 것입니다. 나의 미래 모습이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상상이 가능해야 스승(멘토)의 자격이 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성인(Saint)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해당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나 진행과정, 아니라면 적어도 철학 정도는 닮고 싶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상상에서 미래 모습을 연상할 때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좋아하면 닮아가고 존경하면 따라 하게 되어있습니다.






스승과 제자, 멘토와 멘티는 자연스럽게 위아래가 형성됩니다. 상호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나 합의에 의해 진행되는 관계가 아니라면 갑을 관계로 흐를 우려가 있습니다. 존경과 애정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합니다. 사회에는 수많은 상하관계가 존재합니다. 선생과 학생, 상급자와 하급자, 원청과 하청 등 보이는, 보이지 않는 많은 곳에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은 도제 방식이 디자인에서는 널리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 알바로 일했던 디자인 기획실(현재의 디자인전문회사)의 사장님은 데생 교육도 하고, 일도 시키고 여러 가지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술도 잘 마셔야 한다고 하던 자유분방한 예술가 타입이었던 그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제 디자인 인생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삶 자체를 따라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선택적으로 멋지다고 생각한 치기 어린 젊은 시절에 멋들어진 자유인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반 백 살을 살아가면서, 반 이상(25년 이상)을 디자인일을 하며 살았고, 앞으로 큰 이변이 없는 한 디자인과 연관된 주변일들을 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글을 적고 보니, 현재 학부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2학년들이 거의 자식 수준에 가까운 연령차이가 되어갑니다. 제 여자 동기들을 기준으로 본다면 충분합니다. 그야말로 조심해야 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나이 차이는 충족되었지만, 젊은 디자인 학도들에게 비칠 제 모습이 좋게는 아니더라도 타산지석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란는 걱정이 앞섭니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고 겸손하며, 일말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게 해야겠습니다. 부담스러운 '멘토'외에 좀 더 가볍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표현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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