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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기연 Jan 09. 2023

청년은 왜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나?

기술의 현재 : 기술인의 직업가치

  명장, 명인, 무형문화재, 숙련기술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공통되는 것이 바로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를 이어서 기술을 전수받고자 하는 대상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술영역을 막론하고 공감하는 부분이라 본다. 얼마 전 본 한 옹기장인은 기술이전은 커녕 현재 본인의 생계도 위협받고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장인은 눈물을 보였다. 기술이 본인의 대에서 이어지지 못하는 아쉬움과 함께 현실에 대한 허망감 같은 것이리라.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앞 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까지의 기술은 한 가지 의미에만 국한되었다. 부지런함과 성실, 근면 따위의 개념이 내재된 테크닉이 기본이다. 이것은 아주 좋은 생계수단이 되면서 어떤 영역은 사회적 존경과 나아가 국가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호황일 때에는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계승후보자들이 줄을 섰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했다. 개인 외에 큰 회사나 조직에 속해서는 휘하에 많은 예비 기술인들이 존경과 부러움을 보냈었다. 당사자 역시 힘들게 기술을 손에 익혔을 것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기술이전체계가 있기 힘들었고, 일하는 것이 곧 배운다는 개념도 팽배했다. 요즘으로 치면, 불법에 가까운 노동을 수업비 명목으로 지불하면서도 쉬이 핵심기술을 이전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좋은 기술은 좋은 재산이다. 대를 이어서 장자 같은 자식들에게만 은밀히 부와 기술이 이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기술은 곧 돈이었다. 돈은 다시 사회적 지위와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 단순한 등식이 존재했고, 그것은 소수의 차지였다. 


  세월은 너무 빠르게 흐르고, 기술은 세월못지않게 발전했다. 사람의 기술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이 기계를 조작하지 않아도, 기계 스스로가 학습해서 일을 해낸다. 거의 대부분 사람의 손이 필요했던 기술은 대체가능한 영역이 되었다. 아직 그러지 못한, 아니 그러지 않은 영역은 경제성과 효율에서 간택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기술이 곧 돈이 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던 등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것은 청년에게는 실전이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직업은 곧 인간다운 삶을 유지해주는 기본적인 장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한평생을 투자하는 것은 쉬이 덤빌 수 없다. 빠른 결과가 나오지도 않는다. 더 이상 청년에게 비난의 눈길을 보낼 수는 없는 이유다. 그들에게는 인생이기에 그렇다. 


  앞 서 말한 기술은 과학과 정보통신으로 대체되고 있다. 거기에는 미래가 있다. 사람이 모인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진다. 누굴 탓하기는 어렵다. 기술에 대한 모해했던 영역이 구체적으로 뚜렷해지고 있다. 아니, 뚜렷해졌다. 문송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학도 더 이상 진리를 탐구하기보다는 취업을 위한 1차 관문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것에도 못 미치는 대학이나 학과도 수두룩 하다. 어찌 보면, 특정한 직업만을 위한 대학과정이 오히려 가식 없이 순수해 보이기도 하다. 공대는 인문대보다 취업이 좀 낫다. 기술코리아에서 기술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은 불분명하던 것을 명확하게, 효율감 있게, 빠르게, 정확하게, 가시적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수십 년 동안 익힌 인간의 기술을 단 번에 해낸다. 알파고의 바둑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쉽게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에서 무궁무진함을 매번 찾아낸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에는 골프 치는 로봇이 나왔다. 단 한 번의 스윙으로 홀인원을 했다. 그게 뭐 어렵겠는가? 골프장의 형태, 날씨, 바람을 고려하고 거리계산을 하면 홀인원을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청년은 미래가 중요하다. 빨리 결과도 내야 되고, 이 길이 아니면 빨리 플랜 B도 찾아야 한다. 대체제가 없이 한평생을 바쳐야 비로소 주어지는 것에 베팅할 여유가 없다. 더군다나, 최고의 장인에 오른 분들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청년부터 하던 근면, 부지런한 생활을 지금도 똑같이 한다. 요즘말로 워라밸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세대는 그 이전세대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모두를 살릴 수는 없다. 사그라져가는 불씨 중에서 과학기술이나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발맞추려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기술은 존재하고 발전할 가능성이 그나마 있어 보인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전통만을 고수하고, 변화하는 시대상과 기술에 눈감고 귀 닫아버리면서, 청년과 시대 탓만 한다면 미래는커녕 현재도 장담할 수 없다. 


  청년이 와서 그 분야가 사는 것이 아니다. 그 분야가 힘들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통은 고수하되, 변화를 수용하는 분위기가 생겨야 한다. 누가 하겠는가? 디자인도 학문이자, 기술이면서, 과학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컴퓨터를 활용한 표현, 정보, 공유가 자리 잡았다. 예전처럼 붓에 물감을 묻혀가면서 렌더링 한 장에 3일이 걸리고, 도면을 손으로만 그렸으면, 지금의 디자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산업 자체로 보면 어렵다고는 하지만, 많은 청년들과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그 속에서 다른 영역과 융합을 시도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실패해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행하고 있다. 


기술을 잇는 것도 현재 기술인이, 끊는 것도 현재 기술인이의 손에 매달려 있다. 잔인하지만 현실이다. 

전통에 대한 해석이 기가 막힌 이날치의 영상이 그 잔인한 현실속에서 가능성을 보여준다.


https://youtu.be/3P1CnWI62Ik

범내려온다(이날치,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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