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학부와 연구중심의 대학원이 이루는 환상의 컬레버레이션
시대가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빡이면 새로운 게 나온다.
1년 전이랑 비교해도 그럴진대, 앞으로는 얼마나 바뀌겠는가.
많은 전국의 디자인 전공학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빨리 변하는 시대의 한가운데서 외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물론 아닌 곳도 부지기수이다.
과거에 본인이 배운 방식이나 내용만을 전달하는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런, 발전이 없는 교수나 학교의 입장은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세상이 바뀐 건 본인들도 알지 않는가?
학교마다, 교수마다 강조하는 바가 있겠으니, 산업디자인 영역에서 본다면 이렇게 학부와 대학원의 커리큘럼이 생기면 어떨까 한다.
1. 디자인원론 트랙
2. 문제해결 트랙
3. 표현능력 트랙
4. 융합 트랙
5. R&D 트랙
자, 하나씩 말을 풀어보겠다.
1. 디자인원론 트랙
세상이 제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불변하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원론이다. 아무리 많은 응용이 나온다고 해도 뿌리가 약하거나,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무수한 응용이 무슨 소용인가? 그게 바로 디자인원론 트랙이다. 근본 있는 디자인 토양이 되는 철학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디자인사, 조형원리, 이론, 현상 등이 포함된다. 이 트랙은 연륜 있고 사고의 깊이가 남다른 원로교수님들의 몫이다. 기초가 튼튼하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직업인으로서, 전문가로서 디자인을 대하는 삶의 철학까지도 이 트랙에는 포함되어야 한다.
2. 문제해결 트랙
1) 산업문제 해결(제품디자인 중심)
2) 사회문제 해결(서비스디자인 중심)
이 트랙은 전통적인 디자인 분야인 제품, 포장, 시각, 환경, 멀티미디어, 서비스 디자인영역과 함께 보다 폭넓게 시도되는 디자인 영역의 실질적인 해결을 위한 트랙이다. 산업문제 해결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문제를 담당한다. 기획과 개발, 품질, 사용에 이르는 제품디자인을 중심에 둔 실질적인 능력함양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는 원가(VE)와 품질(QC)의 개념이 들어가며 다양한 개발방식과 생산, 조립 등의 개념이 포함된다. 이른바 CMF도 이 영역에 들어간다. 금형, 사출, 후가공등에 대한 능력을 키운다.
사회문제 해결은 서비스디자인이 중심이다. 디자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산업문제와 사회문제로 크게 나뉘는데 새롭게 디자인이 진출하는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행정, 법률, 정책 등 새로운 가능성이 즐비하다.
3. 표현능력 트랙
1) 조형능력(형태, 색채, 질감 등)
2) 컴퓨터 활용능력(2D, 3D, 4D, 코딩, AI활용 등)
3) 논리 능력(정량 글쓰기, 보고서, 기획서 등)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디자인에 대한 개방은 누구나 디자이너가 되는 사회를 만들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디자이너들은 일정 수준의 조형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이후 아름다운 결과물로 이어진다. 가시적이든 아니든. 바우하우스 같은 철저한 기초 조형능력의 함양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결국 미래 디자이너들의 변별력을 가늠하게 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컴퓨터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디자인 프로그램의 운영능력은 기본이고, 데이터나 AI의 활용이 그것이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편리한 도구는 도구로써 최고의 효율로 운영해야 한다. 러다이트 운동처럼, 세계적인 대세를 거부할 수는 없다. 모르면 물어서라도 가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주로 말하기와 글쓰기로 대표되는 논리 능력이다. 주로 글쓰기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를 제삼자에게 정확하고 객관화한 근거를 바탕으로 주관적 어필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이 논리적이지 않으면 디자인은 영원히 그냥 끄적인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AI로 만들어낸 결과물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만간 그 논리도 데이터에 밀릴 수 있지만, 최소한의 능력은 갖춰야 한다. 어차피 디자인 결과물로는 많은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 설명과 의도와 세부적인 내용은 글이 대신한다.
4. 융합 트랙
1) 경영, 경제
2) 공학, 엔지니어링
3) 행정, 정책
4) 파인아트(예술)
경영, 경제는 응용산업분야인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다. 숫자가 빠진 디자인은 그냥 그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가장 쉬운 근거가 바로 숫자로 표현되는 자본이다. 디자인의 경제적 효율가치와 기대치 등 모든 객관화된 자료는 데이터고, 그 데이터는 숫자다. ROE를 렌더링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산업디자인(제품) 영역에서는 공학이나 엔지니어링과의 융합은 필수다. 각자 저마다 영역에서 전문화를 추구하지만,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 디자인과의 융합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다음은 서비스디자인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과 정책이다. 지역문제, 사회문제는 행정이나 정책이 예산수립과 집행의 근거가 된다. 사용자 참여의 공공영역에서 제안을 위해서는 행정지식이나 감각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는 전통적인 예술분야이다. 예술콘텐츠는 미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악, 미술, 무용, 웹툰, 영상과 대중예술, 특히, K컬처로 여겨지는 콘텐츠는 이미 그 자체로 세계적 수준이다. 디자인이 반드시 융합해야 하는 부분이다.
5. R&D 트랙
1) 학술연구
2) 선행디자인
이 트랙은 주로 대학원의 석 박사 과정에서 다룰 주제이다. 수많은 산업적 가치를 위해서는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근거가 뒷받침해 주면 효과가 배가 된다. 사회과학의 입장에서 이론을 정리하고, 현상을 파악하면서 논리적으로 디자인의 역할을 지원해줘야 한다. 학술적 연구를 통한 논문은 디자인산업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선행디자인이다. 산업계에서 행해지는 디자인은 현실적이다. 일단 급한 것부터 처리할 수밖에 없다. 선행디자인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쉽지 않다. 아주 규모가 큰 글로벌 대기업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이 역할을 석, 박사 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원에서 수행해야 한다. 그것도 앞서 말한 학술연구에 기반하고, 글로벌 대기업 등 규모가 큰 기업과 함께 하면서 고급인력의 취업도 함께 노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선행디자인이 행해지면서, 거시적인 디자인 발전방향에 대한 가이드가 수립된다. 이 큰 깃발을 보고 학생부터 루키 디자이너들, 많은 기업이나 기관등에서 참조를 하게 된다.
막연하게나 머릿속에 있던 것을 정리해 봤다. 다듬어야 할 거친 부분도 있겠으나, 크게는 이런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에 바꿀 수 없겠지만, 천천히 바꿀 여유도 없을 거다. 학부와 대학원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는 미래 디자인산업이 여전히 생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딱 이런 기준이 아니라고 해도, 항상 새롭게 뭔가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디자인의 속성 아니겠는가? 아주 핵심적인 가치와 원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변화의 대상이자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행위. 그것이 디자인을 바라보는, 디자인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