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시간 확보하기

조리 외 업무를 정리해서 최적화해야

by 시현

어린이집 조리사의 주된 업무는 급식조리와 주방관리이다.

그 외에 식자재 발주와 서류 작업이 있다.

여기까지는 모든 국공립 어린이집이 거의 같다.

차이는 원마다 있는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면 아이들 수저포크와 개인 물통을 각가정에서 보내게 하는 원이 있고 그렇지 않은 원이 있는데

둘 다 제공하는 우리 원은 그만큼 조리사의 일이 많다.

매일 아침 각반으로 가져갈 물과 물컵을 조리사가 챙겨 왔다고 하고,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일조차 조리사의 몫이었다고 했다.

교사들이 먹는 얼음을 관리하는 일도 조리실로 넘기고,

샘들은 커피 저은 수저를 한 번씩 쓰고는 싱크대에 던져놓고 갔다.

어정쩡한 일은 조리사에게 다 미룬 것이다.


여기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일까지 있었다.

냉장고 앞에 붙어있는 식자재 재고관리 리스트였다. 발주한 식자재가 오면 재고사항을 매일 기입해 달라고 했다.

대부분의 식재료는 식단에 맞춰 그날그날 들어오고, 남은 식재료에 라벨링까지 하고 있는데 굳이 저런 리스트가 필요할까 싶어 나는 원장에게 물어보았다.

"이전 조리사님이 재고가 있는데도 깜박하고 자꾸 발주를 하셔서요..."

그러니까 일종의 징계성 업무였던 것이다.

차근히 재고를 확인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 일텐데 거기에 또 업무를 얹은 셈이니,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늘어난 업무는 다시 다른 일을 부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징계성 업무는 교묘히 관례처럼 이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잘 찾아서 걷어내야 한다.



조리사의 근무시간은 휴게시간 빼고 8시간이다.

여기서 조리 외 업무시간을 빼면 진짜 조리시간이 나온다.

조리 외 업무가 많다는 건 조리에 쓸 에너지와 시간이 줄어들어 조리사로 하여금 음식에 정성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된다.

아이들 급식과 직결되는 조리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리 외의 업무를 정리해서 최적화해야 한다.


이 작업은 이해관계가 있는 다른 샘의 반발이나 갈등의 소지가 있으니 호감과 신뢰가 좀 쌓인 다음 하는 게 좋다. 나는 입사하면 한 달 안에 이 작업을 끝내는 편이다.




먼저 원장의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원장님, 원장님이 생각하시기에 조리사가 급식조리에 몇 시간을 써야 한다고 보세요?"

".... 뭐... 8시간 일하니까 그 반인 4시간 정도는 써야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 조리를 직접 하는 사람이건 조리실 밖에서 관리를 하는 사람이건 상식적으로 조리사가 근무시간의 반은 온전히 조리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이다.

"네, 저도 최소한 그 정도 시간은 온전히 조리에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시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

"투쟁하듯 지켜내야 하죠."



내 업무를 이렇게 정리했다.

급식담당샘이 하고 있던 발주와 키즈노트의 식단 올리는 일을 우선 가져왔다.

조리와 더블어 조리사의 핵심업무이다.

키즈노트의 식단사진은 조리사가 부모님들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니 조리사들이 기피하지 말고 꼭 챙기라고 하고 싶다.


아침에 각반으로 가져갈 물은 교사들이 직접 가져가고, 물컵은 연장반샘이 전날 챙겨두도록 하였으며,

재활용 쓰레기는 오전 오후 보조교사가 나누어서 버리게 되었다.

식품온도에 관련된 서류(CCP)는 발주처에서 보내온 배송탑차온도로 갈음하고,

얼음은 먹는 교사들이 채워놓기로 했다.

티상자를 만들어 나는 커피와 티백등을 채워주고 찻숟가락은 하나로 정리해 작은 겁에 꽂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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