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천국의 맛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질게요 1

어린이집에서 조리사는 섬 같은 존재

by 시현

어느 날 원장이 를 불러 부탁을 했다.

부모참여수업이 있는데 기서 요리수업을 해달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자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물어오는 걸 설명하다 보면 어느새 난 그걸 하고 있다.

그때도 아마 "쉬워요...."라고 한 모양이다.


나는 가르치는 일은 해 본 적이 없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자 봐요"하며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다. 말보다 몸으로 알려줬을 때 사람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도 요리를 말로도 하고 싶었다. 내가 요리를 계속한다면 요리를 하고, 요리에 대해 글을 쓰고, 요리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떤 일을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내가 하는 일이 좀 많지고 있었다.

오전간식, 점심, 오후간식이 나간 후에도 야간연장 아이들의 저녁을 한다. 두세 명이던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일곱여덟 명씩 된다.

매일 급식사진을 찍어 키즈노트에 올린다. 까먹지 말고 하루 세 번 찍어야 한다.

또 매일 해야 할 서류 작업과 금요일에 하는 발주업무도 만만치가 않다. 급식일 수를 고려해서 한 달 발주 금액을 대략 맞춘다. 이 부분은 꽤나 신경을 써야 한다. 또 같은 메뉴도 달리 만들 때가 있어 발주하면서 구상 하는 편이다. 내가 유일하게 머리를 쓰는 시간이다.

식단표의 선택사항을 정하고 변경된 식단에 대해 감수받아야 할 것도 내가 정해야 한다.

특별한 날에 맞는 식단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아이디어를 낸다. 가끔은 각반에 필요한 수업준비를 도와줄 때도 있다.


물론 난 원장의 신망을 얻고 있다.

그래봤자 눈치 보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게 작이지만.


어린이집에서 섬 같은 존재인 조리사는 독립적이라는 장점과 너무 독립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의 지점을 원하지만 전혀 다른 곳에 떨궈질 때도 있다.




또 하나의 일이 자발적으로 얹어졌다. 부모참여 요리수업 하게 된 것이다.

먼저 인터넷 검색해 적당한 메뉴를 찾았다.

닝빵에 패티와 야채를 넣어 만든 미니버거에 홈런볼 눈을 붙인 개구리버거이다.

만들기가 쉽고 아이들도 좋아할 듯싶었다. 몇 번의 테스트를 해서 레시피를 정했다.

그다음엔 그걸 담을 포장용기를 정해야 했다. 미니버거 2개가 예쁘게 담길 수 있는 제품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수업에 필요한 재료의 양을 계산하고 어떤 상태로 준비해 둬야 할지, 학부모들이 사용할 재료를 어떻게 배치하고 리필해 줄지, 시간 날 때마다 의논하며 준비해 갔다.


부모참여수업 전날, 재료준비는 다 됐지만 정작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구상이고 연습이고 할 시간은 없었다.


어설프게 연습을 하느니 그냥 말하자

요리강습이라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는 걸 보면서 천천히 설명해 주자. 그러면 된다.

여유가 생기면 그때 애드립으로 분위기를 띄우자.


다음날 아침

일기예보대로 종일 비가 그것도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속에서 부모참여요리수업을 진행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정신에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대형텐트 안에서 반별로 네 번의 수업을 무사히 끝냈다. 반응이 좋았다.

원장이 커피차까지 불러 학부모들에게 바로 만들어 주는 음료까지 공했다. 학부모들은 만족스러운 듯했다.


이런 날 끝나고 회식까지 있었다.

우리 어린이집의 회식은 내가 30십 년간 알고 있는 회식이랑은 거리가 한참이나 다. 회식이라기보단 먹으면서 하는 긴 회의라고 풀어쓰고 싶다.




다음날 그동안 밀린 일을 해야 했지만 7세 반의 수업준비를 해주느라 여전히 손도 못 됐다.

지난주 그 반 샘이 내게 물었다.

"조리사님 가지로 간단히 할 수 있는 요리가 있어요?"

"있지, 가지탕수육"

"가지 탕수육이요?"

"응 쉬어"

내가 또 이런 것이다.

"... 글쎄... 뭐가 있을까?"

이러고 말았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텃밭에서 따 온 가지를 가 썰어 주, 아이들 그 위에 소금을 뿌다, 잠시 후 가지에서 물기가 나오면 아이들이 직접 튀김옷을 묻힐 수 있도록 개별 봉지에 전분가루를 담아 내주었다. 전분옷을 입은 가지를 가져오면 그걸 튀겨서 탕수소스와 함께 다시 내주었다.

아이들은 직접 키운 가지로 만든 가지 탕수육을 먹어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이 수업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가지에 대해 전보다 할 말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제 진짜 내 본 업무로 돌아와야 한다.

지난주에 2주간 보건소에서 나오는 점검기간이라 했다. 이번주엔 올 것이 분명했다. 서류 작업이 밀려있었다. 6시간짜리 조리사 위생교육을 일하며 틈틈이 듣긴 했지만 2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이렇게 일이 밀린는데에는 다른 이유 있었다.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긴 시간을 생활하는 공간인 만큼 청소가 중요하다.

매일 쓸고 닦고 버리고 하는 일은 끝이 없다.

누군가는 일 수건과 걸레를 세탁해야 한다.

정말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어린이집에는 이런 업무를 도와주시는 보육도우미 선생님이 한 명씩 있다. 하지만 4시간 안에 주방보조일과 청소일까지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복지관에서 보내주는 어르신들의 도움도 받긴 하지만 그마저도 올해는 줄었다.

작년보다 인력이 줄다 보니 주방을 주로 도와주시는 도우미샘이 청소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되면 내가 그 일을 하느라 주방에서 빨리 나올 수가 없다.

서류정리가 점점 밀리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그것까지 하고 매일 늦게 퇴근을 해야 한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주방일에 숙련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고, 일의 양을 계산해서 내 체력에 안배할 줄 도 안다. 지속적으로 일이 밀린다면 그건 구조적인 문제이다.



보건소 점검이 있기 전날 원감은 내게 물었다.

"교육은 다 들으신 거죠?"

기한을 말한 적은 없었다.

"아니요 2시간 남았어요"

"올해 위생교육 오픈 된 지 꽤 됐는데...."

"낼 오전 중으로 교육이수서 출력해 놓을게요."

원감은 내가 퇴근할 때까지 검수서에 대해선 말이 없었다. 검수서 출력을 자기가 해줘야 내가 서류 작업을 할 수 있으니 자기가 출력을 안 했으면 당연히 나도 안 했을 터이다.


다음날 근하니 검수서가 있었다. 점심을 빨리 해놓고 밀린 검수서를 쓰기 시작했다.

두 장 정도 썼을 때쯤 보건소에서 점검이 나왔다고 샘 한 명이 알려왔다

원장이 급히 주방에 들어와 물었다

"준비는 다 됐죠?"

"서류가 좀 안 됐어요..."

"왜요?"

나는 '왜요?'라는 말이 어쩐지 이상하게 들렸다.

그리고 조금 서운해졌다.

'지난 2주일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 단말인가!'

"일이... 일이 자꾸 밀려요"

"..... 일단 알겠어요."

원장은 황급히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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