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한테 우리 원은 돈까스도 탕수육도 다 만들어 먹인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슬그머니 제품으로 바꾸라고요? 나 이제 얼굴도 팔려다 들 알아보는데..."
"아니... 조리사님이 힘드시니까... 이제 어느 정도 내려놓으시라는 얘기죠"
그렇게 하지도 못하리라는 근거를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만류에도 내가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듯했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하지만 해야 할 건 해 놓고요.'
그녀의 속내가 읽혔다.
진짜 내가 내려놨을 때 요즘 음식 퀄리티가 어쩌고 하며 가장 먼저 입을 열 사람이면서...
다음날교사실에서 서류정리를 하고 있었다.
원감이 의자를 당겨 앉고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나긋하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님한테 한소리를 들었잖아요. 며칠 전 점검 때문에."
검수서를 퇴근한 후에 출력해 놓고서는 내가 밀린 교육 때문에 검수서를 쓰지 못한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어찌 됐든 내가 할 말이 없을 거라생각한 모양이다.
나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왜 10분도 앉아서 서류 작업을 할 시간이 없는지 나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그러고서 힐긋 보니얼굴엔 적반하장이라쓰여 있었지만,원감은오히려 한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조리사님, 점검기간을 알려드렸고 그럼에도 서류 작업을 안 해놓으신 걸 조리사님이 그렇게 얘기하시면 안 되지요"
그녀의의도대로 그런 정중한 태도에서 더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는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란 말을 못 하겠어서 그래요"
정말 그랬다.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질게요... 시말서를 쓰던 징계를 받던..."
원감이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이 모든 얘기가 들리는 곳에원장이 있었다.
"저번 일로 원장님도 삐지시고 원감님도 제품 쓰라고 했다면서요."
보조샘도 만류했다.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 그게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안 해도 될 이유가 되진 않았다.
식단에 돈가스가 있거나 특별한 날이면 나는 돈까스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정육점에서 등심을 얇게 썰어와 우유, 사과, 양파를 갈아 넣은 숙성소스에 하룻밤을 재운 후 달걀과 건식 빵가루를묻혀 만들었다.망하긴 했어도 예전에난 돈까스집 사장이었다.내게돈까스는 늘 만드는 음식이다.
그 많은 양을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가긴 해도 1년에네다섯 번정도라서 그리귀찮은 마음은 없다.
마감을 해 놓고 돈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원장이 컵을 씻으러 주방에 들어왔다. 나를 보고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선생니임.."
"내일 돈까스가 있어서요... "
나는 빵가루를 눌러대며 이어 말했다.
"지난달에 생일잔치 때문에 다른 메뉴로 나갔잖아요..."
"이 달에생선가스 대신 돈가스로 넣었어요."
원장의 얼굴에 순간 많은 감정이 피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제가... 도와줄 일 없어요?"
"네... 거의 다해가요..."
".... 내가 구청에 인력지원을 요청해 놨으니 좀 기다려 봅시다..."
원장이 내 어깨를 다독이고 나갔다.
설정이나 계산이 없었는데 그런 것처럼 되어버렸다.
담날 아이들은 맛있는 돈까스를 먹었다. 나도 맛있게 먹었다.
불편한 마음을 녹여준 돈까스
원감은 외부교육으로 오후에나 원에 들어온다고 했다.
점심을 먹은 원장이 내게 차 한잔을 권했다.
"알고 있어요조리사님..."
원장은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어린이집 원장은 적어도 평면적인 인물은 아닐 것이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나도 잘 모른다. 다만
2년 넘게 내가 보아온 원장은사사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사롭지 않음은 쉽지 않다. 사사로운 것 차체가 사소한 거라서 한 두 번이라도 사사로우면 그는 사사롭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장은 나에 대한 신뢰를 사적으로 표현한 적이없다. 사적인 얘기를 나눈 적도 없다.
둘 간의 공감대는 오로지아이들뿐이다.
아마 원장의불편했던 마음이 순간 풀어진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황이, 기분이 어쨌든 너도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는구나...'
한번더 인력충원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말했다.
"출근하면 하루 쓸 에너지는 다 쓰고 가요, 남으면 청소를 더하고 샘들 간식을 만들어 주고 가요, 남기지 않아요, 그래서 더는 못해요."
원장은 또 알고 있다고 했다.
"제가학부모들에게 하는칭찬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되요 조리사님."
내가 부담을 느껴 어쩔수 없이 하고 있지나 않을까 마음이 쓰인 모양이다.
"그 정도까지는 할 수 있어요. 할 수있으니까 시작한 거고요....처음엔다 만들어 먹인다고 해놓고 어느날 보니 제품으로 바뀌었네 하는 말 듣고싶지 않아요. 제가 딱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거든요.
저같은 사람을 기준 삼고 음식을 만들어요."
결론에 너무 빨리 합의 본 원장과 나는 그제야 어색했던 며칠 전을 떠올렸다.
원장은 보건소에서 나오기 전날 원감에게 준비가 다 되었냐고 누차 물었다고 했다.
"서류작성이 덜 되었으면 나눠서 하려고 물어지요.
나한테 됐다고 다 확인했다고 해놓고 일을 난감하게 만들어서.... 원감 저한테 좀 혼이 났어요...."
"......"
나는 진지해 질 수 없었다.
원감은상상도 못할 이 장면이 너무 재밌어서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원장님은 인력 충원 약속을 결국 지키셨어요
관계부처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리사들의 고충을 설명하고 추가적인 인력지원을 요청한 끝에 올해 3월부터 석식의 조리인력을 지원받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