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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Feb 01. 2023

2. 재료가 보이는 주방

주방은 정보와 기억이 가득한 곳

주방의 꽃은 냉장고라 생각다. 

있는 냉장고 보다 1.5배는 크고, 고급스러운 메탈 외장에, 칸이 분리냉기가 나오, 육류전용 공간까지 있는 그런 프리미엄 냉장고를 갖고 싶었다.

갖가지 식재료를 손질해서 넣어 두고 언제든 꺼내 근사한 요리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 당시 인기 있는 TV 프로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다. 슌이라는 일제 칼, 스타우브와 르쿠르제의 주물냄비, 트러플 같은 고급식재료등을 검색해 보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수도 없이 했다.

것만 있으면 뭐든 다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불타오르는 시기였다. 한마디로 뽕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이 바늘이 되어 부풀어 있던 내 안의 공기를 빼주었.

<사람의 부엌>이었다.

전직 디자이너였던 작가가 냉장고가 없는 세계 곳곳의 부엌을 가보며 쓴 글이다. 아직도 냉장고 없는 부엌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럼에도 잘 먹고살 수 있음에 한 번 더 놀랐다. 어릴 적 우리 집 부엌이 생각났다. 냉장고 대신에 있던 찬장도...

'그래 없을 수도 있어 냉장고가.' 전제가 무너졌다.

그리고 나니 내 욕망 중에 냉장고가 서서히 지워져 다. 냉장고가 지워지니 함께 많은 것들이 지워졌다.


욕망에선 지워졌지만 그래도 냉장고는 유통기한과 더불어 재료를 지켜주는 존재라 생각했다. 

장을 보거나 배송이 오면 지체 없이 냉장고로 행했다.


좀 부지런히 살림을 할 때면 한꺼번에 식재료를 씻어 먹기 좋게 손질한 후 안이 보이는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곤 했다. 사온 당근이나 오이, 양배추를 살펴보기보다는 여전히 좋은 밀폐용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주방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크지도 않은 냉장고가 비워져 .

라인 구매가 많아지고 새벽배송이 보편화되니 한꺼번에 많이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고기와 육가공류 식품을 사지 않 것도 한몫을 했다. 


채소를 더 자주, 더 많이 사게 되면서 채소를 관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금치는 대가 섬초는 짧고 녹색이 짙었다. 볕을 훨씬 많이 받고 자란 모양이다. 표고버섯은 시간이 지나니 동그랗게 안으로 말려있던 봉우리가 우산처럼 펴졌다. 대파를 다듬고 남은 뿌리 물에 담가두얼마 있다가 파가 새로 자라났다. 알고 있었는데도 신기했다.


고기는 관찰할 게 없는데 채소는 많았다. 냉장고로 직행했던 채소들은 이제 상온에서 하루정도 대기한 후 양념과 함께 리에게로 왔다.

좀 더 많은 채소를 상온에 두어보았다. 상태는 괜찮았다. 생각해 보니 상온에 있는 채소가 더 자연스러운 거였다.

재료가 보이는 우리집 주방 한 켠

그렇게 과일과 채소들이 냉장고에서 구출되면우리 집 냉장고는 존재감이 작아졌다. 김치와 유제품, 소스와 다듬어 놓은 양념넓은 냉장고 안에서 찬기의 혜택을 독차지하고 있다.


유명하다는 비건, 치유식, 마크로 비오틱등 채소요리 유튜브를 찾아봤다. 고기요리가 조리과정 중심이고 맛에 포커스를 두었다면 채소요리는 제철과 영양소, 보관방법 등 조리 이전 단계에 대한 설명이 많았다.

채소요리 전문가들도 채소와 과일의 상온보관을 강조했다.


주방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토마토는 상온에 두면 맛이 훨씬 좋아지고, 고구마와 양파 기억만 하고 있다면 온에서도 오래 보관된다. 

채소 같은 경우 상온에 두면 썩거나 물러지기보다 대부분 말라비틀어져 간다. 마른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쓸 수 있다. 마른 채소는 육수 끓일 때 넣으면 더 진한 맛이 고, 약간 쪼글쪼글한 가지는 볶으면 더 식감이 좋다


비닐뽁뽁이를 대신해서 쓰는 종이완충제 감자, 고구마, 당근등의 뿌리채소를 싸서 바구니에 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단 이것도 까먹을 수 있으니 라벨을 붙여두는 것이 좋다. 비닐 대신 누런 재생용지와 바구니를 더 가까이 두 눈 편안해진다.


과일과 채소뿐 아니라 통밀과 파스타, 메밀면, 올리브오일, 코코넛오일, 발사믹식초, 커리파우더, 가람마살라, 건바질, 통후 등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메뉴에 대해 벽한 구상을 끝내고 움직이기보다 슬슬 움직이면서 재료를 보고 떠오르는 음식을 할 때가 나는 더 많다. 파처럼 상파(상온에 있는 것 파먹기)도 가능하다.




내가 주방에 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그 작가를 책으로 다시 게 되었다.

<제로 웨이스트 키친>었다.

냉장고를 덜 사용하고 덜 버면서 건강하게 잘 먹고살 수 있는 식생활 소개한 책이다. 

이번에는 읽으며 반가웠다.

나의 고민에 대해 살림 잘하는 언니에게 듣는 조언처럼 격 없고 소박한데도 아름다웠다. 

주방 한켠 두고 다시 짬짬이 보며 살림에 대한 의욕과 영감을 얻는다. 

 추천하고 싶은 류지현작가의 제로웨이스트 키친

요즘 주방인테리어 미니멀한 분위기가 트렌드인 듯싶다. 주방 살림 가능한 보이지 않게 하고  화이트톤에 우드상판과 선반으로 포인트를 다음 고급가전으로 경제력을 살짝 들러는 게 특징이다.

깔끔하고도 련되어 보인다.


주방은 분명 청결하고 정돈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주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 아니라 정보와 기억이 가득한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나를 어달라는 채소들아우성을 들을 수도 . 과일의 단내가 먹기도 전에 기분을 좋게 해주기도 한다. 눈에 들어온 재료들이 합쳐지며 그날 저녁 메뉴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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