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주말에 비가 오면개들과 산책도 못하고, 세탁기 돌리기도 좀 그렇고, 재활용쓰레기를 버리기도 뭐 하고...
아무튼 촘촘했던 일과에이가몇 개씩빠진 기분이 든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면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다.그러다가 비가 내리기시작하면여유가 생긴다.
수제비 생각이 났다.
비가 오는 날엔 골목 평상으로 매일나가던 마실도 못 가고 빨래도 못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멸치육수에 수제비를 한 냄비 끓여 내왔다. 반죽을 좀 떼어 언니와 나에게 나눠주면 우린 그걸 새까매지도록 쪼물딱거리며 놀았다.
일단 멸치육수를 올려놓고 반죽할 재료들을 꺼냈다. 어린이집에서는 기본 3색으로 반죽을 했다. 5색으로도 해봤다. 단순하고 담백한 음식일수록색을 달리 해시선을 붙잡아야 한다.
당근과 시금치로 즙을 내어 반죽을 해 두고 애호박과 감자그리고 마지막에 넣을 대파를 썰어두었다. 그리고는 잠시 딴짓을 한다. 쉬엄쉬엄 해도 된다는 게 수제비의 특징이다.
한 시간쯤 지나서 치대 놓은 반죽을 한번 더 치댄다.표면이 매끈해지면 썰어놓은 채소들을 끓은육수에 넣은후 슬슬 떼어내기 시작하면 된다.마지막에 대파를 넣고 한소끔 끓이면 끝이다.수제비는 김치만 있으면 따른 반찬이 필요 없다.그리 어려운 음식은 아니다.
그렇다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숨 고르며 할 수 있는 음식은 더 아니다.느긋한 마음이 생겨나야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인 것이다.
".... 이래서 비 오는 날 수제비를 해 먹는구나..."
집에서는 수제비를 해먹은 적이 별로 없었다.
'수제비를 해 먹을까?'
갑자기 먹고 싶은 적은 많았다.
육수에 뭘 넣지?... 멸치는 있고... 뭘 넣고 끓여야 국물 맛이 좋을까?.... 집에 밀가루가 있던가?.... 없으면 사 와야 되네... 그럼 육수를 내고... 밀가루사다반죽을 해놓고.... 얼마나 둔다 하더라... 레시피를 찾아볼까?... 맞다 야채도 넣어야지... 감자와 애호박... 근데 반죽할 때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 거지?...복잡하구만... 그것만 있나 또 치우고... 그냥 나가서 먹는 게 편하겠네... 사 먹는 게 훨씬 싸게 쳐..
이내 관두기로 한다. 이렇게머릿속에서 손으로 넘어오지 못한 음식은 많았다.
손에 익은 음식만 해 먹고 산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식단에 따라 조리를 하다 보면 그동안 안 해봤던 음식이 많다.막상 해보면 쉽고 참 맛있다.
매생이 전, 채소전, 고구마튀김, 메밀국수, 맛탕, 연근강정 등....
채소전
카톡프로필에 간간이 올린 사진을 본 선생님이 어느날내게물었다.
"집에서 어떻게 일일이 해먹어요?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거 또 해 먹고 치우고 할 생각하다 보면 에이 그냥 사서 먹자그러게 되더라구여"
대답을 듣고 싶어 묻는 건 아니였을 것이다.그 말을 듣자 나는
나한테 묻고싶어 졌다. 어떻게 지금처럼 하게 됐냐고
내 모습을 떠올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생각을 하면 안 돼요...
그냥 무작적 주방으로 가서 앞차마를 두르고 냉장고 문을 열어요.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재료를 꺼내요."
그랬다.
나도 아침이면 침대에 누워 아침밥을 뭘 하까를 생각하다가 그냥 관둔 적이 많았다. 요리뿐 아니었다. 뭘 배울까? 뭔가 도전해 볼까? 하다가 생각만으로 끝나버리곤 했다.
'비용이 얼마나 들라나... 나이가 좀 있으니 기본만 배우는데도 오래 걸릴 거야..... 좀 더 알아보고나중에 시간 되면 하자.....'그랬던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 생각을 아주 많이 해서 시작한 건 기대치가 높아 오래가지 못했다. 어설프게 하는 건 성에 안 찼다. 뒤따라하는 느낌도 싫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생각 속에 있었고 평가만 잘할 뿐 할 줄 알는 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이라기보다 계산이라 해야겠지만.
언젠가부터 계산보다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움직이면서 계산하기로 한 것이다.
작은것부터 시작해 보고,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어느 날 그런 계시가 떨어져서는 아니고 갑자기 변한 것도아니다. 시간이 걸렸다.그리고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조금만 총기가 떨어지면 요즘도 계산만 하고 앉아있다. 정신을 가다듬고는계산을 멈추고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