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천국의 맛

나를 키운 아이들

포크상과 수저상을 주다

by 시현

다른 직업에 비해 주방의 문턱은 낮다.

그래서 주방에 일하는 사람들은 참 다양하다. 요리사라는 꿈을 갖고 정식으로 공부를 하고 온 사람, 알바를 하가 주방에 눌러앉게 된 사람,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 취업알선이 되어 얼떨결에 온 사람, 자격증도 특별히 배운 적도 없지만 20년간 주방일을 해 온 사람 등...

밥 안 먹는 애 밥 해먹이려다 12년째 이러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는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정도의 요리하는 사람이었다. 일이 안 맞은 건 아니었는데 어떤 주방이던 싫증이 금세 났다.

소문난 맛집이나 객단가가 높은 전문식당의 주방도 6개월쯤 지나 일이 익숙해지면 난 지겨워다.

게다가 망하는 곳은 왜 이리 많은지... 2년 이상 근무한 곳이 없었다.




지금은 한 어린이집에서 2년 반째 일하고 있다.

매일 같은 사람들을 마주칠 정도로 같은 시간에 난 출근을 한다. 일단 출근하고 나면 내 몸이 알아서 움직일 정도로 일 같은 을 반복한다.

창문을 열고, 널어놓은 행주를 개고, 쌀을 씻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아이들의 밥을 내준다. 매일 같은 포맷의 서류를 작성하고 같은 시간에 인사를 하며 퇴근한. 마치 라디오 프로 같다.


전에 일할 땐 같은 날이 없었다. 바쁜 날,바쁜 날, 미치도록 바쁜 날, 오픈하자마자 바쁜 날, 마감하려는데 손님이 밀려와 바쁜 날.

그뿐 아니다. 손님도 매일 다르고 직원과 알바생은 자주 바뀌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수시로 벌어졌고, 날씨는 늘 변수가 되었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바뀌지 않는 건 메뉴뿐이었다.

종일 피자를, 파스타를, 쌀국수를, 볶음밥을 셀 수 없이 만들어 내야 했고, 일 년 내내 같은 재료를 씻고 썰어야 했다.




어린이집 급식은 영양사가 짠 식단에 따라 조리사는 조리만 한다. 영양사는 칼로리, 영양소, 조리방법, 아이들의 기호, 예산, 제철재료등을 고려하여 짤 것이다.

요즘 식단을 보면 한식의 비중은 60%를 넘지 않는 듯하다. 국이나 선호도가 높은 음식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긴 하지만 타 주방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음식을 하게 된다.


여러 주방을 거쳐온 나도 처음 해보는 음식이 많았다. 세발나물과 톳 같은 제철재료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자장밥, 탕수육, 맛탕, 냉메밀국수 등은 흔하긴 하지만 집에 하게 되진 않는다. 빠에야, 케이준치킨샐러드, 푸팟퐁카레, 차슈덮밥은 말할 것도 없다.

주먹밥은 갖가지 재료로 8가지 종류 되고, 파스타도 소스별 재료별로 그 정도 된다. 전과 튀김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국은 안 끓여 본 게 없다. 나 같은 경우 잡채와 김밥이 자신 없었는데 이제 잡채는 껌이다.




사실 능숙해지면 지겨워질 가능성이 더 크다.

많은 양을 번에 하고, 일의 양도 예측 가능하다. 지겨워질 이유는 많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하루도 지겹지가 않다는 거다. 나처럼 싫증이 잘 나는 사람이, 2년 이상 한 곳에서 일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지겹지가 않은 게 나도 신기했다.

또' 왜일까?'를 생각했다. 왜 지겹지가 않가?


매일 똑같은 아이들이다. 인원도 비슷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매일 다른 아이들이기도 하다. 우리 원에 오는 4, 5, 6, 7세 아이들의 일 년은 엄청나다.

기저귀를 떼고, 말문이 트이고,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뛰게 된다. 줄을 서게 되고 약속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러한 성장을 365일로 나누면 아이들은 하루도 같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매일 다른 아이들에게 밥을 해 줬던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조력하는 셈이다.

아이들은 질리지 않는다. 새록새록 좋아진다.


어느 날 6세반 아이들에게 오늘 김치찌개가 매웠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아니요" 하며 입을 모아 대답하고는 경쟁이 붙었다.

"저는 조금밖에 안 매웠어요."

"저는 하나도 안 매워서 국물까지 다 먹었어요."

마지막에 동하는 이렇게 말다.

"조리사님 저는 아무런 느낌조차 없었어요."

나와 그반 담임샘은 눈을 마주치며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동하의 능청과 허세가 좋다.


지난여름 7세반 아이들이 오디잼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날 오후간식이 잼샌드위치라서 그걸 발라주었는데 의외로 잘 먹는 거다. 두세 달쯤 지나 잼샌드위치가 다시 나왔을 때 아이들은 오디잼을 기억하며 또 먹고 싶다고 했다.

"그건 일 년에 한 번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어"

"아,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

정훈이가 좀 과장되게 아쉬워하길래 나는 정훈이에게

말했다.

"정훈아 내년에 샘이 만들어 놓을 테니까 꼭 먹으러 ." 느닷없는 내 제안에 정훈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음... 저도 꼭 먹고 싶긴 한데... 제가 그땐 학교를 가야 해서 먹으러 올 수 없을 것 같아요."

나는 정훈이의 거절방법이 맘에 든다.


크리스마스날 4세반 채우가 시은에게 했던 말을 듣고 나는 바로 수긍했다.

"산타할아버지랑 택배 아저씨랑 친구야"

채우의 통찰력을 배우고 싶다.




지난주에 졸업식 겸 종업식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줄 상을 준비했다. 그동안 밥을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준 걸 칭찬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아이들 덕분에 나도 컸기 때문이다. 실은 더 치밀한 계산이 있긴 했다.


초콜릿 메달에 포크상, 수저상이라 이름 지어 붙인 후 점심시간에 아이들 목에 한 명씩 걸어주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채소와 나물과 김치를 좀 더 먹기로 약속을 받아냈다. 아이들은 쉽게 약속을 해 버렸다.

심지어 자기는 파프리카틱을 5개씩 먹겠다는 믿기 어려운 약속을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에겐 수저상과 포크상을, 샘들에겐 내맘대로 상을 주다

매일 아이들의 밥을 해주는 게 왜 지겹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

일단 올 한 해 더 해보며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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