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욕 , 뉴뇩, 뉴욕
어떤 기억들은 바다 위의 부표와도 같다.
눌러도 눌러도 이내 떠올라버린다.
그때의 나는, 그 부표들을 모른척하고 싶었다.
떠오르지 않게 만들려고 눌러보아도 툭, 불거져 나오는 기억들.
그것들에서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영어공부? 어학연수? 유학?
따위의,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 / /
나이 앞에 붙은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던 날.
나는 그곳에 있었다.
뉴욕.
혹은 뉴뇩.
그것도 아니면 누욕.
도시 전체가 소음이었다.
모두가 말하고, 부딪히고, 지나갔다.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거대한 소음 속에서 침묵을 택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시끄러워 오히려 말이 필요 없었달까.
누구도 묻지 않았고, 내 침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그곳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 / /
생각할수록 미스터리였다.
몇 번이나 말해줬건만.
‘뉴욕’이라는 발음을 제대로 못했다.
엄마도, 또 아빠도.
지방 출신이라 사투리는 어쩔 수 없는 걸까.
처음에는 인상을 찌푸리며 ‘뉴욕’이라고 발음을 정정했으나,
어느 시점에 가선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누욕.
뉴뇩.
뉴욕.
동일한 장소를 칭하는데도, 엄마와 아빠와 나의 발음이 그렇게 조금씩 어긋났다.
정확히 가 닿지를 않았다.
그 단순한 발음 하나조차.
“누욕은 어때?”
“우리 딸, 뉴뇩에서 잘 지내나?”
그 질문들은 늘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대답은 똑같았다.
“응. 잘 있지.”
그들은 왜 항상 조금씩 틀리게 말했을까.
나는 왜 매번 설명하려다 그만뒀을까.
정정을 한들, 왜 곧바로 잊히고 말았을까.
단순히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말함으로써 정리되는 것들이 있고, 반대로 말을 꺼내는 순간 복잡해지는 것들이 있으니까?
...
하고픈 말은 한 번도 하지 못한 기분이었다.
그 도시에서의 시간 자체가 그랬다.
뭔가 조금 비껴간 느낌?
...
뉴욕은 그렇게 내게 남았다.
어딘가 한 음절씩 어긋난 도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