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멈추는 병. 그때 맨해튼.
맨해튼에서 보낸 1년.
나는 영어학원을 다녔다. 그곳의 학생이었다.
다르다와 이상하다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곳은... 그냥 이상했다.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꽤 다녀봤으나, 웬걸.
출석체크가 끝나기 무섭게 당당히 나가버리는 페디캡 운전수들 하며, 네이티브 수준으로 영어를 하는데도 수업에 나오는 틴에이져까지.
알고 보니 비자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미국에 합법 체류하기 위해, 즉, 학생비자를 얻으러 학원에 다닌다나?
기왕 다니는 거, 배움에 매진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손에 꼽혔다.
강사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특별한 자격증도 없는 알바생들에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곤 했으니까.
미리 알았더라면 다른 곳을 찾았으려나?
지인이 비자며 학원등록 대행에 수수료를 깎아주기까지 했던 터라, 묻고 따지고 할 겨를도 없었으니.
헐렁한 수업 분위기에 얼렁뚱땅 휘뚜루마뚜루 끝나는 수업이었으나, 정식 허가를 받은 학원인지라 레벨테스트와 정기 시험 같은 커리큘럼이 있었다.
게다가 학생들 중 몇몇과는 끝나는 날까지 같은 반이었다.
프리토킹 시간이던가? 그 시간만 되면 각자의 삶이 화제의 주를 이루었다.
센트럴 파크 근처에서 인력거를 끄는 20대 초반의 남자들은 경찰 단속을 어떻게 피했는가에 관해 떠들었고, 러시아 아저씨는 롱 아일랜드에 사둔 집의 세입자가 월세를 밀려 말썽이라 불평했다. 이민 온 뒤 영어 배울 기회가 없어 등록했다는 엄마 연배의 아주머니는 쌩뚱맞게도 내게 옷 패턴 뜨는 법을 전수해주려 열심이었다.
그들은 같은 병을 앓고있었다.
말을 멈추지 못하는 병.
어쩌면 병이라기보다는 증상이었다.
모두들 그 증상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눈에는.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잉' 이 있었다.
내 영어 선생님, 잉. 말이 너무 많은 나머지 늘 호흡부족에 시달리는.
그녀의 말은 언제나 토네이도처럼 나를 휘감고 지나갔다.
단어는 산더미. 문장은 릴레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흘러넘치는 것이었다. 줄줄줄. 마치 침묵 기능이 없는 것처럼.
그 앞에서 나는 점점 더 조용해져 갔다.
말대신 생각만 해댔다.
'괜찮다고 해야 하나? 사실은 괜찮지 않은데도?'
'안 괜찮다고 말하면, 귀찮아지겠지?'
'별것 아닌 토픽인데, 뭘 저렇게들 심각해?'
내 안에서 쌓여가는 그 모든 생각! 생각! 생각!
굳이 정의하자면,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말이 나오지 않는 타입이었다.
/ / /
학원을 나서면 바로 맨해튼 42 번가였다.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간판. 파도치는 관광객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말을 내뱉고있는.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그 거리의 소음이 싫지 않았다.
영어학원에서와는 반대로 뭔가 보호받는 느낌?...
도시의 익명성이 나를 보호해 주는 기분이었다.
말이 너무 많은 사람들.
그래서 오히려 침묵이 도드라지는 도시, 뉴욕.
침묵하며 서있던 내 모습이 당시에는 낯설지 않았다. 전혀.
/ / /
말 못 멈추는 병.
알고 보면 그건, 침묵을 두려워하는 증상이다.
잠시의 침묵이 견딜 수 없어 입을 열고 마는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침묵이 어색해 말을 내뱉고 말았던 쪽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한국에서의 나.
세상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아무 내용 없는 말들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그게 위로라면 위로일까?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 생기는 오해가 있는 반면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것들도 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줄 알았겠지만, 글쎄? 오히려 마음과 말 사이의 간극만 깨닫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종의 양면성?...
그 잠깐의 정적을 참지 못해 말 못 멈추는 병을 앓아왔던 내가, 전혀 새로운 걸 배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