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말하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 - 뉴욕 } 4화

옐로캡에서 내린 그녀

by 슴샥

그녀는 옐로캡을 타고 왔다.


내 친구 경이.


초, 중, 고, 대학, 회사

길다면 긴 인생 사이클 내내, 한 번도 내 곁에서 떨어져 본 적 없는 사람.


그녀가 맨해튼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겨우 나를 보겠다고.



울컥했다.


그래도 하나는 건졌네.


지구 반대편까지 나를 만나러 와줄 사람 하나쯤은 있는 거네.


그 생각으로 잠시 벅차올랐다.


요즘 말로 하면 플렉스였으려나.

우리는 옐로캡을 타고 돌아다녔다.

도로만 나왔다 하면, “택시!” 하고 엄지를 세웠다.


섹스 앤 더 시티였나.

즐겨보던 미드에서 주인공이 택시를 부르던 장면에 둘 다 꽂혀 있었던 탓이다.


당시로서는 턱없이 과분한 지출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경이와 함께 맨해튼을 돌아다닐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싶어, 옐로캡을 타고 관광 코스를 차례로 밟았다.


"킵 더 체인지!"


경이의 그 말은 유독 박력 있었다.

나의 맥 빠진 데다 끝맺음도 흐릿한,

"플리즈... 킵 더 체인...쥐..."


따위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도 비슷하게 느낀 걸까.

내게 묻곤 했다.


"야! 너 왜 이렇게 조용해?"


그 말을 족히 백 번은 들었을 것이다.

경이가 머물렀던, 겨우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너, 하나도 안 들떠 보이는데?"

"이상해. 뉴욕 간다고 그렇게나 날뛰던 애가."


"정말 괜찮은 거 맞냐?"


경이의 그 모든 질문에 나는 일절 대답을 않았다.


그런 나를 향해 경이는 엄청 떠들어댔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 아니냐? 어떻게 세상이 굴러갔을까 싶어. 그렇잖아? 서태지가 나오기 전에는, 왜 서태지 같은 사람이 없었을까 말이야."


경이는 서태지 빠였다.


/ / /


잭클린을 대하는 경이의 태도 또한 나와는 정반대였다.


'정말 며칠만 있다 가는 거 맞아? 한국에서 뭘 얼마나 싸들고 온 거야? 여행용 트렁크 그거, 현관문에 핏이 안 되던데.'


라는 잭클린의 말에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어 보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웃은 뒤에는 곧바로 약수통만 한 물통을 한 손으로 붙잡고는 원샷!


그 모습에 질려 잭클린이 자리를 뜰 정도였다.


키는 내 어깨밖에 안 오는 데다 몸은 깡마른 경이가 오기 하나는 대단했다.


거기다 어찌나 꼼꼼하게 훈수를 두는지.


'넌 단체생활 한다는 애가 너무 물러터졌어.

들어오자마자 냉장고 칸부터 나눠서 썼어야지.

자, 이제부터 이 칸을 네가 쓰는 거야.

요기부터 요만큼. 요 정도면 잭클린 칸으로 충분하겠지?

또 저기는 룸메이트... 누구라 그랬지? 이름이?...'


라면서 냉장고 칸마다 이름표를 붙이기까지 했다.


잭클린이 뒷짐 지고 서서 듣고 있거나 말거나, 일체 상관없다는 듯이.


정말이지 거리낌이라고는 없었다.


소호,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이스트 빌리지, 웨스트 빌리지, 코니 아일랜드, 또 어디더라?


어딜 가든 그랬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그곳에 처음 가는 관광객 같지가 않았다. 완전히 로컬이었다.


그날도 지하철 타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던 날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어쩌다 그곳까지 휩쓸려 들어갔는지 같은 건.

파슨스 패션스쿨 근처였던 건 확실하다.


어둡고 시끄러운 지하 공간에 우리들 주변으로 어느새 왱왱이들이 ( 왱왱대며 떠들어대는 시끄러운 젊은이들을 경이식으로 표현한 것 ) 진을 치고 있었고,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거 잘못 들어온 건가? 싶었으나, 엉거주춤하는 사이 출구에서 더욱 멀어져 버리고 말았다.


인파에 휩쓸려 도착한 자리에는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들.


패션쇼 겸 전시회라나?


그 지하공간 전체가 파티 중이었다. 일종의... 패션스쿨 졸업파티?...


이번에도 당황한 건 나뿐이었고, 경이는 한없이 태연했다.


심지어 작품 의도며 컨셉이며, 모르는 사람들을 붙잡고는 떠들어대기까지 했다. 디자인이라고는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나는 결국 자리를 피했다.


담배연기를 피해서.


빛을 찾아서.


내가 길치라는 걸 까맣게 잊은 채로.


...


그렇게 기껏 찾아들어간 곳이 공연장이었다.


스테이지로 통하는 쪽문.


그러니까, 스테이지 한복판이었던 것이다!


난 그저, 빼꼼, 열려있는 문을 밀었을 뿐인데.


한창 연주 중인 록밴드라니!!!


...


초능력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들어온 쪽문은 이미 닫혀버린 뒤였고, 무대 아래로 관객들이 보였다.


나의 존재를 보고 손가락질? 아님 환호? 그것도 아님 화가 난 건가???


그 와중에 귀에 꽂히는 노랫말.


"누 - 욕! 오오오, 뉴 - 뇩!"


안 되는데.


엄마 아빠가 아니면 뉴욕을 저렇게 부를 리 없는데,

...

그 외침이 뭐랄까, 마치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들렸다.


지구 반대편 뉴욕까지 도망온 사연을 경이에게 지금 당장 털어놓으라, 재촉하는 것처럼.


/ / /


그날 어떻게 무대를 빠져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뉴욕에 오게 되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다음 날, 경이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작별 인사 치고는 이상한 말을 하나 남기고.


"나, 이혼하려고."


그 목소리가 다시 혼자가 된 방에 벽화처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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