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말하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 - 뉴욕 } 5화

브룩클린 브릿지

by 슴샥

경이가 돌아간 후, 나는 생각에 시달렸다.


자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이 / 뭐든 꽁꽁 싸들고 앉아 풀지 않는 나


우리 둘이 이렇게나 다른 이유가 뭘까를 줄곧 생각했다. 생각했으나...


그저 용기의 차이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여길 용기.


자기 얘기를 꺼냈을 때 그에 딸려오는 것들, 이를테면 상대의 반응이라던가, 평판, 또 뭘까. 아무튼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마음자세?


영어학원에 오는 사람들, ( 늦깎이 장학도 아주머니 라든가, 세입자 문제로 불평을 일삼는 러시아 아저씨, 법원에 가서 주차위반 티켓을 무효화시키고 돌아왔다는 인력거 청년들 등등 ) 그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나, 적어도 자기 얘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와 달랐다.


기껏해야 빙긋 웃거나 고갯짓으로 응수하는 것이 고작인 나와는.



/ / /



브룩클린 브릿지는 사진에서 수도 없이 봤다.


뉴욕에 오기 훨씬 전부터.


정작 맨해튼에서 영어학원을 다녔던 일 년 내내 브룩클린 브릿지에 실제로 가본 건 딱 한 번이었다.


초겨울 오후쯤이었던가?


브룩클린과 맨해튼을 연결하는 그 다리의 중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려대고 있었다.


국제전화 표시가 떴고, 누구일지 짐작이 갔다.


"잘 지내니?"


엄마의 목소리.


"똑같지 뭐..."


습관이 되어버린 내 대답.


정적.


얼마간의 대화.


브룩클린 브릿지의 풍경, 뉴욕의 초겨울 날씨, 내 옷차림, 밥은 잘 챙겨 먹는지, 그런 류의 무난하고 무해한 질의응답으로 구성된.


이대로 끊겠지 짐작했으나, 엄마가 그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은?"


"..."


브룩클린 브릿지의 소음이 전화를 타고 흘러가는 중이었다.


엄마가 지칭한 '그 사람'이 누구인지, 굳이 되물을 필요 따윈 없었다.


한때 우리 집 식탁에 앉아, 엄마와 밥을 먹었던,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던 사람. 나도, 또 엄마도, 그가 '그 사람'으로 불릴 거라 상상해 본 적 없었던...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몇 차례나 반복하는 나였다.


말이란 건 늘, 그 직전이 가장 어려웠으므로.


"... 헤어졌어."


마침내 내게서 나온 대답.


그러나, 엄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긴 침묵이었다.


통화가 끊어진 줄 알고 폰을 확인했을 정도로.


엄마가 먼저 입을 뗐던가?


"언제?"


"좀 됐어."


정확한 날짜는 자신 없었다.


마지막 대화를 나눴던 날 / 짐 빼던 날 / 공항으로 향하던 날


그 모든 날들이 이미 몽땅 흐리멍덩해져 버렸고, 우리가 헤어진건 그 사이 어디쯤이겠거니 싶었으므로.


"왜 말 안 했어?"


라는 엄마의 질문은 막상 듣고 나니 무거웠다.


많고 많은 이유들 때문일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진심이었다.


어차피 말이란 건 진심을 전부 담기에 부족하지만.


엄마는 한숨을 감추는 듯했다.


"그래도 네 일인데. 엄마한테는 알 권리가 있지 않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엄마에게 한 말은 이 한마디였다.


"미안해."



/ / /



통화는 애매한 분위기로 끝났다.


건강 잘 챙기라는 엄마의 말이 그렇게나 어색할 수가 없었다.


'우리 헤어졌어!'


그 간단한 말을, 돌이켜보면 당사자인 그 사람에게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싸웠고, 침묵했고, 짐을 쌌고, 문을 닫았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않은 채, 나는 지구반대편에 와있었다.


브룩클린 브릿지를 걸어가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 선택을 이해시키는 일

내 감정을 납득시키는 일

내 인생의 이유를 끝없이 해명하는 일


그런 일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머리 아팠다.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다가왔다.


브룩클린 브릿지를 미적미적, 느려터져라 걸어가는 나를 순식간에 제친 후, 다리 끝까지 사정없이 달려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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