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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샥

나빌의 말은 술주정뱅이의 주사와도 같았다.


'금고 속 금품을 수거해오라는 변호사의 지시를 받고 왔다'


소민은 그 정도만 겨우 알아들었을 뿐.

특이한 악센트가 섞인 나빌의 프랑스어는 쉽지 않았다.

그가 말끝을 흐리는 건, 술기운이라기보다 오랜 습관처럼 보였지만.


나빌은 다시 해머를 들었고, 벽 속 금고로 다가갔다.


쾅쾅

쾅쾅쾅


그치지 않는 파열음.


멈춰!!! 멈추라니까!!! - 이건 쥴리의 악다구니


쾅쾅쾅쾅

쾅쾅쾅쾅쾅


어떤 경고도 또 위협도, 통하지 않았다.

금고에 달린 핸들을 때려 부술 기세로 내리치는 나빌 앞에서.


애밀리가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큰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분명.


해머를 든 상태로,


"짐작했었소... 애밀리, 당신 딸들을 만나러 이 마을에 왔을 거라고... 뫼르소 그 애, 당신네 딸들이랑 꽤나 친했잖소..."


그딴 말이나 지껄여대는 나빌.


그들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소민이 쥴리를 다독이느라 진땀을 뺀다.


소민: 생각도 하지마. 너, 저런 인간이랑 싸우다 진짜 큰일 나. 저 술주정뱅이, 눈깔이 반쯤 돌아버린 상태라구. 내가 사이코패스 분장을 많이 해봐서 아는데, 딱 저런 눈빛이야.

쥴리:...

소민: 야! 내 말, 듣고는 있어?

쥴리: 기억해야해... 나빌이 말한 변호사... 그게 누군지...

소민: 변호사? 금고 때문에 나빌을 이리로 보냈다는?

쥴리:... 모르겠다고! 젠장!


쥴리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쥴리: 최근에 K.C. 누나라는 여자한테 연락 왔거든. 죽은 동생 일에서 손 떼라는 식으로. 약혼식날 크로캉부슈를 돼지처럼 처먹을 땐 언제고, 이제와 나더러 유족도 뭣도 아니라면서. 그 돼지 같은 년이 K.C. 가 벽속에 저 금고를 숨겨둔 걸 알고 손을 쓴 건가? 저 금고! 저걸 미리 알고 나빌을 심부름 보낸 건가?...


뿌드득, 이빨 가는 소리를 내는 쥴리. 그러나 이내 멈춘다.


쥴리: 아냐. 그럴 리가 없어. K.C. 한테 돈이 어디 있다고, 사업인지 뭔지, 쫄딱 망해버렸는데!

소민: 너 괜찮아? 왜 이렇게 화났어? 너답지 않게.

쥴리: 씨발! 돈은 무슨! K.C. 그 새끼, 완전 거지였다고! 죽던 바로 그날까지!


그때, 거짓말처럼 소민의 주머니에서 소리가 났다.


'띠롱'


하는, 아이메시지 알림음.


천운인가.

저녁부터 불통이었던 폰에 신호가 잡힌 것이었다.


/ / /


소민이 서둘러 경찰에 신고를 한다.


그녀의 프랑스어가 못마땅했는지 애밀리가 휴대폰을 낚아챈다.

말을 쏟아낸다. 숨 돌릴 틈 없이.


애밀리: 나야, 애밀리. 어디긴. 리조트지. 날씨가 이 모양인데, 들어와 있을 곳이 여기 말고 어디 있겠어. 당장 출동해. 살인사건 났으니까!!! 아니, 아니, 리조트 바깥 절벽. 알지? 그 절벽. 작년에도 사람이 죽어나간. 믿어져? 거기서 사람이 또 죽었다고...


목격담, 금발 남자, 살인마, 철근, 여자 시체.

애밀리의 입에서 단어들이 뒤죽박죽 흘러나오는 것을, 쥴리가 휴대폰을 확, 빼앗는다.


쥴리: 경찰이 서둘러 출동해야 합니다. 고립 상태예요. 네. 쁘띠 몽블랑 리조트. 인원이요? 여기 저랑, 제 사촌 소민, 애밀리.... 또 있어요. 술 취한 남자가 기물파손 중입니다. 변호사 지시를 받았다 주장하긴 하는데요...


그러다 폰은 다시 애밀리에게로.


애밀리: 아드리앵이랑 같이 왔어. 걔는 아직 1층에 있지. 아니지, 아니야. 여자를 죽인 범인은 따로 감금시켜 둔 상태고. 쥴리가 맡아서 처리했지. 쥴리가 누군줄 모른다니? 주짓수 프랑스 대표선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래도! 나빌이 여기와 있다니까. 예전에 마을에서 알제리 식당 했던, 나빌. 그건 볼란제리 부부네 가서 물어보라고. 그 부부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순간, 엉뚱한 인물이 폰을 가로챈다.

나빌이었다.


나빌: 나는 딸을 만나러 왔을 뿐이오. 내 딸, 뫼르소. 어렸을 때 자란 동네라 이리로 왔겠지 싶었소. 아니오. 그 애는 유명한 유튜버요. 이름 검색하면 다 나오는. 아마 지금쯤 촬영 중일 거요... 여보쇼! 이봐!...


뚝.

전화가 끊긴다.

배터리가 나간 모양이었다.


쥴리: 솔직히 말해봐. 당신 아까 거짓말했지? 변호사한테 받은 지시, 그거 당신이 꾸며낸 얘기지? 그러니 경찰한테 딸을 만나러 왔다는 둥, 딴소릴 지껄인 거고!

나빌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쥴리: 이봐! 대답 똑바로 안 할 거야?

애밀리: 왜 또 이래? 이럴 시간이 어딨어. 경찰이 언제 올지, 서둘러 연락해 봐야지.


애밀리가 파카 안주머니를 뒤적인다. 휴대폰을 찾는다.

소민은 자리를 뜬다. 충전기를 찾아서.


/ / /


저기 있다.

충전기.


케이블을 폰에 꽂으려다 소민의 시선이 멈춘다.


침낭 옆.

유튜브 다이아몬드 버튼.

버튼에 각인된 글자.


'Meursault, en route'


소름이 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이봐요! 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그렇게 외치며 한달음에 달려가는 소민.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소민: 나빌! 아까 경찰이랑 통화할 때, 딸 얘기를 했었죠? 딸 이름이... 뫼르소?

나빌: 그래. 내 딸은 굉장한 부자야. 걔가 찍은 영상들이 돈을 벌어다 주거든.

소민: 그렇겠죠. 나도 잘 알아요. 나, 그 채널 구독자였으니까.


숨을 들이키는 소민.


소민: 내 말. 잘 들어요.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말.


잠깐의 침묵.


소민: 당신 딸... 죽었어요. 절벽에 죽어있는 여자 시체. 당신 딸 뫼르소...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소민.

언제 이렇게나 가까이 온 걸까. 나빌에게 멱살을 잡힌 채였다.


나빌: 다시 말해보시지.

소민: 놔... 이거 놔...

애밀리: 지, 진정해, 나빌! 진정하라고!


쥴리의 발차기.

나빌이 휘청거린다.

손을 놓은 것인지, 놓치고 만 것인지, 멱살이 풀어진다.


뒤로 넘어지는 소민.

거의 동시에 괴성을 지르는 나빌.


애밀리가 나빌을 붙잡았고, 쥴리가 소민을 일으켰다.


소민: 어쩐지 너무 익숙하다했어. 시체 분장을 매일같이 하는 거라, 그래서 익숙한 줄 알았는데...

애밀리: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좀 말해줘 봐.

소민: 나, 오래전부터 구독자였어... 'Salut tout le monde'로 시작하는 유튜브. 뫼르소의 여행채널.

나빌: 닥쳐! 걔는 그냥 촬영하러 나간 거야! 언제나처럼!

소민: 시체... 촬영해 둔 사진... 내 폰에...


쥴리가 달려간다. 얼른 휴대폰을 가져온다.


나빌이 무너져 내렸다.

표정이, 또 무릎이...

거구가 일순간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 또 소리가 났다.

계단을 내려간 것이었다.

해머를 쥔 채.


/ / /


모두들 나빌이 바깥으로 나갔을 거라 믿었다.

절벽에 가보려는 거라고.

시체는 이미 눈에 파묻혀버린 것을, 뭘 어쩔 작정인지...

애밀리가 걱정을 쏟아냈다. 난장판이 된 줄은 모르고.


1층이 난리도 아니었다.


사냥총이 빼곡한 방.

그 방 문에 쥴리가 달아뒀던 자물쇠를 나빌이 해머로 내리치는 중이었다.


애밀리: 안 돼! 그거 부수면, 살인마를 풀어주는 꼴이야!


아무리 외쳐도, 나빌을 막지 못했다.

그가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는 소리가 어지간히도 컸다.


폭행의 시작이었다.

무차별적 폭행.


비명이... 피가...

금발머리 남자, 입에서 피가... 계속해서 피가...


이번에는 애밀리가 차마 나서지를 못한다.

말리기라도 했다가는 되려 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애밀리: 어쩜 좋아... 나빌... 어쩌다 저렇게 변했지?... 저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쥴리! 뭘 보고만 있어! 어서 가서 말려줘! 저러다 저 남자, 맞아 죽겠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쥴리가 돌진한다.


기계음.


낯선 기계음이 방을 울린다.


통역앱.

쥴리가 순발력 있게 휴대폰의 통역앱을 켠 모양이었다.


금발 남자 입에서 흘러나오는 포르투갈어가 프랑스어로 통역된다.


움찔, 어깨가 들썩인다.

모두가 거의 동시에.


어쩐지 길게 느껴지는 정적.


그가, 고야라는 남자가 외치고 있었다.


'싹 다 고소할 거다.

나를 살인범 취급이라니.

나는 그저 최초발견자일 뿐이야.'


나빌의 무지막지했던 발길질이 비로소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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