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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싹 다 고소할 거야!!!"
손발을 결박당한 상태로 그 말만 울부짖는 고야.
그런 그를 향해 날아드는 나빌의 주먹. 연이은 발길질.
...
방법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나빌의 출구 없는 분노를 멈출 방법이.
저러다 또 한 사람 죽어나가겠어!
소민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치켜 올라간 나빌의 팔뚝이 허공에서 멈춘다.
"그만둬! 이제 진짜 그만둬야 해!"
쥴리였다.
나빌의 팔뚝을 양손으로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체급 차이 때문일까. 쥴리가 무척이나 힘에 부쳐 보였다.
그럼에도 말을 이어갔다.
"잘 들어, 나빌. 이건 어디까지나 당신 선택이야. 여기서 멈추던지, 저놈이 죽을 때까지 폭력을 행사하던지. 나도 알아. 당신이 굉장히 화가 나 있다는 것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거야. 어찌 됐던 책임은 당신한테 있다는 거. 본인이 휘두른 폭력에 대한 책임."
라고 또박또박.
/ / /
모두가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까지 (당연한 일이겠으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폭설. 제설작업 중단. 막혀버린 도로. 언제 올지 모르는 경찰.
고. 립. 상. 태.
애밀리가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해서 떠들어댔다. 나빌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나빌은 입을 꾹 다문 채로 한시도 손에서 해머를 놓지 않았으니까.
고야의 푸른 눈동자에 독기가 가득 서려있었고, 금발은 땀으로 흠뻑 젖은지 오래였다.
이번에는 소민이 통역앱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소민: 당신이 죽인 여자, 저 남자 딸이야.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흥분한 거고.
고야: 죽여? 누가? 내가? 사람을?... 아까부터 말했다. 난 어디까지나 최초발견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내가 절벽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 여자 시체, 눈 속에 반쯤 파묻힌 뒤였다.
통역앱의 기계음이 고야의 말을 문법에 약간 맞지 않게 통역해 읽는다.
포르투갈어는 원체 빠른 느낌이지만, 예상보다 말수가 많았다.
애밀리: 말도 안 되는 소리. 외지인이 이런 시골 동네를 일부러 찾아왔을 리 없어.
고야: 난 드론을 찾으러 간 거다. 이 저주받은 폭설! 유튜브 영상용 드론을 한참 날리는 중이었는데, 폭설 때문에 신호가 끊겼고. 찾아다니다 보니 절벽이었다. 거기서... 시체를 봤다. 보자마자 촬영을 시작했다. 확인해 보라. 내 주머니 속 휴대폰, 그걸로도 찍었으니까.
몸이 묶인 채 버둥거리는 고야.
그에게 다가가 주머니를 더듬는 쥴리.
그러나 이내 손을 휘젓는다.
없다는 표시였다.
고야: 그, 그럴 리 없어... CCTV! 그걸 확인하면 될 일이다! 절벽 쪽 CCTV! 내가 분명히 봤다! CCTV에서 빨간불이 깜박거리는 거!
쥴리: 절벽에 CCTV라고? 그런 게 있었어요, 애밀리? 난 전혀 모르는 일인데.
애밀리: 아마 예전에 달아뒀을걸? 지금도 작동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쿠 웅!!!
위협적인 소리.
나빌의 해머가 바닥에 구멍을 내는 소리였다.
나빌: 내 말, 통역이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군. 한 번 더 거짓말을 했다가는 해머가 바닥대신 그놈 머리통으로 날아갈 거란 말을 포르투갈어로 전하고 싶은데.
소민: 지, 진정하세요...
나빌: 다시 묻지. 내 딸 뫼르소. 네 놈이 봤을 땐 이미 죽어있었다고?
고야: 죽어있었다. 사망한 후 시간이 한참 흘렀어. 그게 아니라면 핏자국 위로 눈이 쌓였을 리 없지. 철근에 몸을 관통당해서 사망한 게 확실하다. 철근 하나가 목 아랫부분 정중앙을 뚫고 나와있었거든. 몸통 쪽에도 여러 개가... 확실해. 내가 그걸 붙잡고 빼내려다 넘어질 뻔했으니까.
소민: 잠깐 멈춰.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생겼어.
고야:...
소민: 저기요, 애밀리! 대답 좀 해주세요. 목격했다지 않았어요? 고야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 그래서 살인마라고 큰 소리로 외쳤던 거고.
애밀리: 그럼. 분명 철근을 쑤셔넣었더랬지.
소민: 맞죠? 직접 보신 거?
애밀리: 공사용 철근이었는데... 그 철근을 아무런 자비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저놈 저거, 괜한 거짓말을 하는 거야. 궁지에 몰리니 마구 지어내는 거야. 시간을 벌 작정으로...
소민: 애밀리!
애밀리: 모, 모르겠어. 나도 정확히는 못 봤다고. 손전등을 들고 가긴 했지만. 워낙에 깊은 어둠 속이라. 난 그냥... 왜 나한테 난리야? 나 혼자 본거 아니야! 아드리앵도 같이 봤다고!
애밀리가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마구 휘젓는다.
일순간 주변이 고요해진다.
고야: 우습지도 않군. 당신들이 뭔데? 경찰도 아닌 주제에, 무슨 권리로 나를 묶어놓는 건데? 이 시골 놈들 수준 하고는! 시체에 박힌 철근 좀 뽑아낸 걸 가지고, 멋대로 나를 살인범으로 몰아세웠어!
소민: 좋아. 당신이 죽인 게 아니라 치자고. 철근은 뭐 때문에 건드렸지? 보통 이런 경우에는 경찰에 신고가 먼저 아닌가?
고야: 그, 그거야... 말했잖아. 난 촬영 중이었다고...
소민: 촬영?
고야: 나 유튜버야... 내 채널에 올릴 동영상을 찍고 있었지... 드론을 띄워가면서... 젠장...
해머를 치켜드는 나빌. 성큼성큼 걸어온다.
소민이 움찔, 하고 놀라 물러선다.
고야: 그래! 동영상 하나 건졌지, 싶었다! 시체를 발견하고 달려가 철근을 확, 뽑아내는, 다이내믹한 동영상! 할리우드 영화 같은! 그 정도는 해줘야 조회수가 밀리언이 나오지!
휘잉-
나빌의 해머가 허공에서 헛스윙을 한다.
고야: 미쳤어? 이 인간 뭐야? 뭔데 죄 없는 시민한테 해머를 멋대로 휘둘러?
나빌: 더는 못 들어주겠군. 난 이놈을 단죄하겠어. 그 정도 권리는 있지 않나? 부모로서.
애밀리: 아, 안돼! 단죄라니. 경찰의 몫이야. 이놈을 잡아가야지. 재판을 받게 해야지.
나빌: 경찰은 올 수가 없다는 얘기, 아까도 실컷 떠들었잖소.
애밀리: 어쩔 수 없잖아. 폭설 때문에 도로가 끊기는 통에.
나빌: 폭설 핑계라니. 과연 프랑스 경찰답군.
애밀리: 그러지 마, 나빌. 경찰로써도 방법이 없잖아.
나빌: 또 모르지. 이 동네 경찰만 유독 나한테만 자비가 없는 건지도 안 그렇소? 죽은 사람이 알제리 이민자의 딸이 아닌 이 동네 토박이였다면, 폭설이 얼마나 쏟아졌던 헬기를 띄웠을 거요. 경찰이니, 재판이니, 신용할 수 없지. 그럴 바에 차라리 내 손으로 직접...
해머가 다시금 스윙을 시도했고, 이번에는 소민이 소리친다.
소민: 기다려!!!
사냥총으로 도배된 방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커다란 외침.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소민: 고야, 내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해.
고야: 몇 번이나 말해! 난 안 죽였어!
소민: 난 그걸 묻는 게 아니야. 당신이 시체를 발견한 시간. 정확히 언제야?
고야: 그, 그건... 드론 신호 끊긴 게... 난 그걸 찾아서 산길을... 절벽 근처에 드론... 그러니까, 이, 일곱 시쯤?...
일어서는 소민. 고야를 뒤로한 채 걸어 나간다.
또 한 번 모두를 향해 소리친다.
소민: 시체! 당신 딸, 뫼르소!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어! 이층엔 그녀의 아이패드가 있었고! 알아들어요? 아이패드에 심박수 기록이 남는다고! 뫼르소의 심정지시간, 우리가 그걸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 / /
이층.
나뒹구는 와인병. 쓰레기봉지.
소민이 빠르게 걸어간다. 중얼중얼, 이런저런 말들을 되뇌면서.
'내가 괜히 나섰나? 남의 일에 뭐 하러'
'나서는 게 맞지. 사람이 맞아 죽게 생겼는데.'
'일단 고야란 놈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에 집중하자.'
'간단해. 아이패드를 가지고 내려가 건강앱을 여는 거야.'
'증명된다. 뫼르소 심장이 멈춘 시간이 일곱 시 훨씬 이전이라면...'
퐁듀냄비. 노트북. 그리고 침낭.
소민이 손을 뻗는다. 침낭 속 아이패드를 집는다.
'비번이 걸려있음 어쩌지? 아이패드에 비밀번호가 걸려있음, 증명이고 뭐고 끝장인데.'
소민의 손이 전원버튼을 누르고.
바탕화면에서 불이 번쩍.
다음 순간,
퉁 -
하고 아이패드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아이패드 배경화면 사진.
그 사진 속 남녀의 모습이 너무 다정한 나머지, 숨이 다 막혔다.
뫼르소와 얼굴을 맞댄 채 활짝 웃고 있는 남자.
그 남자...
아무리 봐도 그놈이었다.
아드리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