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쩌면 이맘때쯤.

탕!!!

by 슴샥

우당탕탕!

아이패드를 치켜든 채 뛰어내려온 소민.


"아드리앵! 그와 관련 있어! 이 살인사건! 여기, 이 아이패드 배경사진! 뫼르소랑 둘이서..."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젓는 쥴리였다. 마치,

'말하면 안 돼!'라는 식으로.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한 소민이었다.

모두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리모컨으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소민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고, 숨이 턱, 막혀왔다.

총구!

이제 보니 자신을 겨냥한 총구가 겨우 서너 걸음 거리였다.

아드리앵...

그가 서있는 것이었다.

사냥총을 겨눈 상태로.

어떻게 된 일인걸까. 저 많은 사냥총 컬렉션 중 하나 같아 보이긴 하는데.

낡아빠진 구식의, 묵직한 사냥총들.


"아드리앵! 당장 그 총 내려놔! 넌 총 쏠 줄도 모르잖니!" , "너 그러다 평생을 감옥에서 보낼 수도 있어!"


그렇게 외쳐대는 애밀리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얼마나 떨어대는지, 되려 공격적으로 들렸다.

쥴리가,


"걱정 마세요. 그래봤자 총알도 없는 총, 뭘 어쩐다고..."


라고 말을 내뱉는, 정확히 그 순간,



탕!!!



폭음이 울렸다.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

소민은 감히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삐- 하는 이명이 그녀의 귓가를, 아니 몸 전체를 휘감고 흔들어댔다.

심한 화약냄새. 벽 구석면에 남은 총알구멍.

같은 곳을 보고 있는 애밀리의 퉁퉁한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아드리앵이 피를 본 뒤로 완전히 돌아버렸다는 넋두리를 어찌나 빠른 속도로 내뱉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악마!"


라는 단어만 내뱉는 아드리앵.


“악마! 악마!”


하면서 도리질. 또 도리질.

그리고 나빌 -

쫄아붙은 기색이라고는 없는.

그의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손가락으로 아드리앵을 가리키며,


"네놈이었군. 뫼르소가 말한 스토커."


라고 웃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나빌이 웃고 있었다. 뭐랄까. 비웃음을 활짝.

소민은 주저앉다시피 했다. 무릎이 멋대로 꺾여버렸고, 눈앞이 핑 돌았다.

총구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지 않고는 못 견디리만큼 총구가 가까웠으니까.

하필 아드리앵이 그녀의 곁을 지나고 있었다.


아드리앵: 저 인간은 악마야. 뫼르소의 유튜브 수입을 몽땅 갈취해 갔다고.

나빌: 그래? 내 딸 말로는 이딴 리조트에 숨어 지낸 이유가 스토커를 피하기 위함이라던데?

아드리앵: 거짓말!

나빌: 누가 할 소리!

아드리앵: 당신이 죽였지! 뫼르소의 돈을 탕진하고 여기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걸로도 모자라서...


말이 끊겼다.

아드리앵이 울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어린아이처럼.


/ / /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두 남자의 말다툼은 답이 없어 보였다.

각자 자기 말만 떠들었다. 상대방 말은 거짓이라 우겨대며.

아드리앵은 나빌이 뫼르소를 죽였다고 주장했고, 나빌은 아드리앵이 뫼르소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그 팽팽한 공방 속에, 나빌이 발을 뗀다.

만취한 상태 같아 보였으나, 망설임이라고는 없었다.

아드리앵에게 냅다 달려들어서는 총을 잡아챈다.

기세 때문일까. 오히려 뒤뚱거리는 쪽은 아드리앵이었다. 무너질 듯, 무너질 듯,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힘의 균형.

다시 불균형.

그러다 결국, 총은 나빌의 손으로 넘어가버린다. 그리고 그 즉시 아드리앵은 도주를 택한다.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 같은 뒷모습을 해서는, 뛰쳐나가버렸다. 폭설이 퍼붓는 바깥으로. 그걸 나빌이 기어이 뒤쫓았다.


애밀리가 뭐라고 소리쳤는지 소민은 알아듣지 못했다.

나빌의 뒷모습 역시 눈보라 속으로 사라진 뒤였고, 쥴리의 외침만이 남았다. 리조트 출입문을 잠궈야 한다는.


애밀리: 문을 잠그라니? 그러면 아드리앵은?

쥴리: 지금 아드리앵 편을 들 때예요? 걔가 총 쏴대는 거 못 보셨어요?

애밀리: 아드리앵... 아드리앵이 못 들어올 텐데...

쥴리: 정신 차려요! 저 사람들 싸움에 우리가 죽게 생겼다고요!


쥴리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열린 문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쳐 들어오는 중이었다.



/ / /


참나무 테이블. 겹쳐진 비스트로 의자들.

벽에서 뜯어낸 나무 스키 두 쌍. 눈썰매가 하나.

금속재질의 장작바구니. 못이 삐죽 나온 와인상자.

그것들을 땀이 나도록 옮겨댔다. 출입문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나무판자로 못질이 되어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다들 탈진 직전이었다. 묶여있는 상태의 고야를 제외하고는.


고야가 뭐라 떠드는지 신경이 쓰여 통역앱을 갖대 댔더니만,


"나 진짜 유명한 유튜버다. 나한테 한 짓, 내 채널에서 전부 공개해 버릴 거다."


그딴 말이 대부분이었다.

쥴리가 귀찮아 죽겠다는 듯이,


"얼마든지 해보시지. 단, 네놈이 시체 훼손했다는 얘기도 빼먹지 말아야 할 거야. 알고는 있지? 시체훼손도 죄라는 거."


라고 응수하자, 그제야 비로소 잠잠해졌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꼴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민: 고야를 계속 저 방에 묶어두려고?

쥴리: 그래야지.

소민: 그러다 쟤가 나중에 진짜로 우릴 고소라도 하면?

쥴리: 저 새끼를 풀어줬다 뭔 일을 치르게 될지, 난 그게 더 머리 아픈데.


쥴리의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온다. 신경 안 쓴다는 식으로.

그걸 본 애밀리가 리조트가 떠나가라 한숨을 쉬어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에 대고 일방적으로 떠들던 것을 마침내 포기한 듯했다.


애밀리: 망할 놈의 경찰 놈들. 하여간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니까.

쥴리: 여태 경찰하고 통화하셨어요?

애밀리: 뭐라더라? 리프트를 가동할 작정이라나? 그 딴것도 변명이랍시고. 쯧쯧...

쥴리: 아직도 경찰한테 기대가 남으셨나 보네요.

애밀리: 안 되겠어. 이거라도 마셔야지. 그래야 진정이 되지.


애밀리의 손에 와인병이 들려있었다.

언제 이층에 올라갔다 온 걸까. 이층 바닥에 뒹굴던 와인병 중 하나임에 분명했다.

남은 와인을 숨도 안 쉬고 병째로 들이키는 모습이 어지간히도 불안정해 보였다.


소민: 리프트 말이에요. 혹시 경찰들이 그 리프트를 타고 출동한데요?

애밀리: 모를 일이지. 가동이 될지 안 될지. 산악스키 타는 사람들이 이동용으로 사용했던 게 벌써 몇 년 전 얘기더라? 그걸 타고 내려가면 아랫마을로 연결이 되긴 하는데... 하여간, 경찰들한테 조사 좀 해보랬어. 나빌에게 가정폭력 전과가 있을 가능성도 무시 못하니까.

쥴리: 대단하시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아드리앵 편을 들다니...

소민: 저기요, 애밀리. 그렇게 무조건 신뢰하면 안 돼요. 그 아드리앵이라는 놈, 모른다고 거짓말을 한 거잖아요. 이거, 이 아이패드, 이층에서 찾은 뫼르소 물건...


소민이 아이패드를 찾아온다. 전원버튼을 누른다.

바탕화면. 뫼르소와 아드리앵이 뺨을 맞댄 채 웃고 있는.



더 보고 싶었으나,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

애밀리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뭔가를 하염없이 중얼거렸을 뿐.

그나마 말끝이 흐려지더니 나지막하게 코 고는 소릴 냈다.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와인과 공포에 찌들어서는.


/ / /


잠든 애밀리의 얼굴을 멍하니 보는 소민.


나빌에게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아드리앵의 말은 사실인가?

뫼르소에게 스토커가 있었다는 나빌의 말은?

자신은 시체 최초발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야의 말은?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의 거짓말이 더 그럴듯한 지만 남은 게임이랄까.


...


소민: 아드리앵이 썼던 총 말야. 벽에 걸린 총들 중 하나겠지? 저런 총은 나도 꽤 많이 봤거든. 내가 분장해 줬던 캐릭터가, 외딴 오두막에서 구식 사냥총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로버트 레드포드 이미지랑 겹치는 바람에.

쥴리: 아마 맞을 거야. 그런 오래된 총을 제깟놈이 어디서 구했겠어?

소민: 야! 무슨 대답이 그래? 너도 잘 모르는 거야?


쥴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잠깐의 틈을 둔 뒤, 말을 이어간다.


쥴리: 제대로 봤어. 그놈이 든 총, 금속 몸통 한쪽에 문양이 새겨져 있었거든. 저 방에 있는 사냥총은 전부 그렇게 생겼어. 특정 문양을 새겨뒀지. 스위스 어느 가문의 문장이라나? 여긴 리조트로 개조하기 전엔 어느 유명한 가문의 사냥용 별장이라서... 젠장! 아드리앵 그 덜떨어진 놈이 어떻게 찾아냈지? 총알상자 그거, 그 사람이 아주 작정을 하고 숨겨둔 물건인데.

소민: 그 사람? 누구? 혹시 K.C.?

쥴리: 응... K.C. 그 사람...

그날도 그랬어. 뭐가 그렇게나 재미난지, 혼자 마구 웃어댔지. 구식 총알을 한 줌이나 상자에 넣고서는, 요즘 시대에 이런 총알은 어디 가서 구할 수도 없으니, 제아무리 사냥총이 있어봤자 무용지물 아니겠냐면서...

아무튼 가끔씩 엉뚱한 짓을 한다니까? 쓸데없이.

소민: 그 엉뚱하다는 얘기, 우리 엄마도 했었어. '쥴리네 약혼자, 에베레스트 다녀왔다면서? 이모말로는 산악 스포츠에 아주 환장을 했다던데?' 하면서.


쥴리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러든다. 소민이 수습할 사이도 없이.


소민: 미, 미안. 갑자기 그때 들은 얘기가 생각이 나서.

쥴리: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산악스포츠라면 환장을 했으니 이딴 곳에서 죽어버렸겠지.

소민: 쥴리야...

쥴리: 작년이었어. 딱 이맘때쯤이었지, 아마? 그 사람, 산악 스키 타고 온다고 나간 뒤로 연락이 끊겼지. 빌어먹을 아발랑쉬 경보! 난 병신같이 거기 현혹이 돼서는...

아발랑쉬가 발생했거든. 여기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동네에. 난 당연히 K.C. 가 그곳으로 산악스키를 타러 갔을 거라 생각했고. 운전해 가는 차속에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데. 아니지. 경찰차를 얻어 타고 갔었나?...

아냐.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난 그냥, 그 사람이 살아있기만을 바랬어. 기도처럼. 주문처럼. 만에 하나 아발랑쉬에 휩쓸렸어도, 비상조치만 잘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들었거든. 그런데...

소민:...

쥴리: 없었어. 그날 그 아발랑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에 K.C. 는 없었다고.


자신의 얼굴을 감싼 채 세수하듯 마구 문지르는 쥴리.

그녀의 얼굴이 전에 없이 창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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