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은 차가웠다.
나무 냄새와 젖은 흙냄새가 한데 섞여 있었다.
오두막은 창고처럼 어지러웠고, 벽 틈새로 눈발이 들이쳤다.
소민은 몰래 숨을 삼켰다. 숨을 크게 쉬면 들킬 것 같아서.
아드리앵이 보였다.
눈물범벅에 코를 훌쩍훌쩍, 아이처럼 흐느끼기까지 하는.
행동이 굼뜬 터라, 저렇게 뭉개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두막 바깥에서 그 낮은 목소리가, 바리톤의 저음이, '아드리앵' 하고 부르는 걸 들었으면서도.
소민은 잡동사니 뒤로 더 깊게 파고든다. 허릴 굽히고, 머릴 숙이고, 손으로는 입을 막고.
그렇게 숨죽인 채로 지켜본 것은 아드리앵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총!
총 개머리판이 바닥을 스치며 튕겼다.
'뭐야! 저 문양!'
소민은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그 총이었다. 어젯밤 아드리앵이 들고 설쳤던 총. 그러다 나빌에게 빼앗기고 말았던.
자세히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 총이 맞았다. 사냥총 컬렉션 방에 한가득 전시되어 있던, 특정 가문의 문양이 새겨있던 총.
"내가 묻고 있잖아, 아드리앵! 말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남김없이!"
"모, 몰라! 난 피만 보면 토한단 말이야!"
한동안 그런 류의 외침들이 오갔다.
그러다 또다시 퍽! , 아드리앵의 몸이 옆으로 구른다. '컥컥' 하는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발길질을 당하는 것이 분명했다.
소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머릿속에선 이런저런 이미지가 뒤죽박죽. 리프트에서 나빌이 추락하는 장면. 총성. 뒤에 남아있던 실루엣 하나.
'프레디였구나...'
그 혼잣말과 동시에 머릿속이 하얘져버렸다.
오두막 바닥이 삐걱였고, 프레디가 한 발 더 다가왔다.
아드리앵의 옷깃이 찢어질 듯 당겨져 있는 모습이 코앞이었다.
멱살을 잡힌 모양이었다. 프레디에게.
"어디야? 그녀가 죽어있다는 장소가?"
프레디가 화를 가라앉히려 애쓰며 소리친다.
그러나 아드리앵이 정신없이 도리질만 한다.
"아냐! 뫼르소 아니라고! 난 못 봤으니까! 아무것도 못 봤어! 피! 거기에 피! 눈밭에 전부 피! 나, 그거보고 토하느라 아무것도 못 봤다! 그러니까 절대 뫼르소, 아니다..."
소민이 들은 건 거기까지였다.
문이 벌컥 열렸고 아드리앵이 끌려나갔으므로.
/ / /
오두막을 나온 소민.
눈 위로 어지럽게 이어지는 발자국.
저 멀리, 손톱만 해져 버린 두 남자의 뒷모습.
프레디가 아드리앵을 끌고 가는 중이었다.
어찌나 화를 내며 소리 지르는지,
"미친놈! 지가 안 봤다고 죽은 게 아니라네?" "입 닥치고 안내나 해!"
라는 말들이 커다랗게 메아리쳤다.
아드리앵의 '피' , ' 절벽' , 같은 단어는 상대적으로 무척 작게 들렸다.
경찰. 경찰에 신고를. 프레디가 아드리앵까지 죽일 모양이야.
...
그러나 경찰이 뭘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어젯밤부터 꼼짝을 않았던 그들이었다.
/ / /
오두막에서 리조트로 찾아오는 짧은 구간이 지옥이었다.
소민은 방향치였으니까. 주변 사람들 모두 아는, 심각한 방향치.
눈보라가 얼굴을 세차게 때려댔고, 발이 눈에 박혀 안 떨어지기 일쑤였다.
막상 도착해 보니 출입문이...
출입문을 막겠답시고 쳤던 바리케이드가 무너져있었다.
나무스키가 한쪽으로 넘어진 모양새가, 누군가 억지로 밀고 나간 흔적 같았다.
"쥴리!!!"
리조트로 들어서면서 소민이 목청껏 소리친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데도 불과하고 몇 차례나.
저편에 애밀리가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를 해서는 휴대폰에 대고 짜증을 부리는.
"도망갔다니까 그러네! 그놈이 도망쳤다고! 고야! 그 미친 유튜버놈!"
누구와 통화하는 걸까.
상대가 뭐라든, 애밀리는 들을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저 본인말만 주절주절. 고장 난 라디오처럼.
전화에 대고 성토하는 중이었다. 고야가 범인이 확실하다면서. 결백하다면, 도망칠 리가 없지 않느냐고.
애밀리의 손엔 수첩이 쥐어져 있었다. 숫자가 빼곡한. 그리고 이름에 줄을 그어놓은.
소민: 큰일 났어요, 애밀리, 바깥이 난리예요, 아드리앵이 저기 바깥에서...
애밀리: 조용히 해!
소민: 아드리앵이 죽게 생겼어요.
애밀리: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금고 속의 돈, 그 인간이 빼돌린 게 맞는 것 같다고!
소민: 그 인간?
애밀리: K.C. 인지 뭔 지하는 놈 말이야!
애밀리가 이를 갈았다. 소민을 쏘아본다. 초록 눈동자를 번뜩이며.
애밀리: 내가 전부터 그랬잖아. 그 사기꾼이 떠벌린 금액이랑은 액수가 안 맞는다고. 내 말은 다들 듣지도 않더니만. 흥!... 그놈이 우리 마을 사람들한테서 얼마를 긁어갔는지 알아? 오트 사업? 지역회생? 웃기고 있네.
그 다음 말은 거의 욕지꺼리라 소민은 알아듣기조차 버거웠다.
소민: 쥴리는요? 쥴리는 어디 갔어요?
애밀리: 모르지. 아까까진 내 옆에 있었는데... 정신없어 죽겠다고. 고야 그 미친놈이 내빼는 바람에...
소민: 도망치다뇨?
애밀리: 리프트 있는 데까지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글쎄, 고야 그놈이 도망치려 하고 있잖아? 단단히 묶어둔 걸, 어떻게 해서 풀었는지. 나를 힘껏 밀쳐버리고는 빠져나가 버렸다고! 어딜 갔는지 원. 그 미친놈 그거, 범인인 게 확실해. 나까지 죽일 의도였을 거라고, 틀림없이.
소민: 죽이다뇨? 애밀리를요? 왜요?
애밀리: 뻔하지. 내가 목격자니까. 그놈이 철근을 찔러 넣는걸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
소민: 못 보셨다면서요. 정확하지 않다면서요.
애밀리: 그거야...
애밀리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휴대폰에 대고 딴소릴 했다.
기록을 확인해야 한다던가. 사업에 얼마를 냈는지 불러보라던가.
돈 얘기가 전부였다. 누가 K.C. 에게 돈을 얼마를 보냈는지, 정보를 모으는 것처럼도 보였다.
멍하니 서있는 소민. 생각을 가다듬는다.
'쥴리가 없다'
'고야도 없다'
'프레디는 아드리앵을 끌고 절벽으로 가버렸다'
'나빌은 죽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아니, 아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치 않다'
'그리고 총! ...'
프레디가 총을 바닥에 끌고 있던 장면과 그의 분노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였다.
2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금속 물체가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애밀리가 통화를 잠시 멈춘다. 몹시 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
소민이 황급히 계단 쪽으로 몸을 돌린다.
/ / /
2층. 벽 쪽에 붙어있는 쥴리.
금고가 보였다. 손잡이를, 자동차 핸들을 빼박은 금고 손잡이를 뜯어낼 기세였다.
"이런 데서 뭐 하는 거야, 쥴리! 바깥에 큰 일 났어! 리프트에서 나빌이 떨어져 죽어버렸다고! 나는 그게 당연히 아드리앵 짓이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니었나 봐! 프레디였어! 프레디가 찾아와 행패를..."
생각나는 대로 소리치며 달려가는 소민.
그러나, 쥴리는 돌아볼 줄을 모른다.
"... 사실이었나 보네..."
라는 말만 무심하게 중얼거릴 뿐.
소민: 내 말, 제대로 들은 거야?
쥴리: 응. 죽었다며. 나빌... 애밀리도 똑같이 떠들던걸. 겁이 나는지, 나가서 확인은 않더라.
소민: 애밀리도 목격했데? 프레디가 나빌을 죽이는 장면?
쥴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잠깐 손을 멈추나 싶었으나, 시선은 여전히 금고만을 보고 있었다.
쥴리: 아무튼 난 못 봤으니까... 궁금하면 당사자한테 가서 물어보던가 해...
소민: 그걸 무슨 수로 물어보겠어? 뭔 통화를 그렇게나 하는지,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데.
쥴리: 아직도 그러고 있어? 안 그래도 휴대폰에 대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떠들길래, 틈 봐서 이층으로 올라온 건데... 한참 전에 이미 애밀리가 경찰이랑 통화했어. 경찰이 그러더라. 나빌이 어젯밤에 리프트가 가동되자마자 그걸 집어타고 아랫마을로 내려갔었데. 도착하자마자 크게 난동을 부렸고. 거기 있던 사람들 하나랑 시비가 붙어서 큰 싸움이 났다더니만... 맞네. 그게 프레디였나 보네.
소민: 뭐야? 넌 지금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아? 나빌이 죽었다고! 리프트에서 떨어져서!
소민은 쥴리의 눈을 보며 얘기하려 했으나, 쥴리는 끝내 금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신이 온통 그곳에 팔려있는 사람처럼.
소민: 뭘 하려고 그래? 설마, 그걸 열려고?
대답대신 쥴리가 금고 표면을 손끝으로 쓸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멈춘 자리에 엠블렘이 하나 보였다. 필기체의 글자가 각인된.
소민: 아이저너... 베히터...
소민이 더듬더듬, 글자를 읽는다. 독일어 같았다.
쥴리: 읽을 줄 아나 봐? 독일어.
소민: 스피킹은 안 돼도, 읽는 거 정도는 알아. 대충은.
쥴리: 가짜였어, 나빌 그놈이 내밀었던 아랍어 서류. 내가 검색해 봤거든. 번역기 돌려서... 이상하다 싶었어. 변호사는 무슨 놈의 변호사? 웃기고들 있네...
쥴리의 입꼬리가 티 나게 일그러진다.
쥴리: 난 또 그 돼지년이 변호사를 고용해서 유산을 꿀꺽하려는 줄 알았잖아.
소민: 돼지년이라니?
쥴리: K.C. 의 누나라는 년. 돼지 같이 생긴 년 있어.
잠깐의 침묵. 그리고 핸들에 손을 얹는 쥴리.
쥴리:... 나, 정말 열심히 생각해 봤거든. 나빌이 떠들었잖아. 재산을 수거해오라는 오더를 받았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그런데, 그 거짓말을 곱씹다 보니, 갑자기 떠올랐어... 이름... 언젠가 들었던 과거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민: 이름이라니?
쥴리: 아이저너 베히터.
쥴리의 손이 금고의 엠블렘을 다시 한번 쓰다듬는다.
소민: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쥴리: 아이저너 베히터. 그 이름이야. K.C. 에게 유산으로 이 리조트를 상속해 줬던 가문.
소민: ...
쥴리: 말하자면, K.C. 가 물려받을 유산이, 이 안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단 소리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쥴리가 핸들을 돌렸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아이저너 베히터, 금고가 입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