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미쳤어!
바람이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다들 미쳐버린 거라고.
이층의 그 어둠 속을 바람소리가 어찌나 고약했던지.
프레디가 위협용으로 총을 발사한 모양인데.
천장 어딘가가 뚫린 건지,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제발, 다들 진정을, 경찰이 해결할 문제라구요, 이런 건."
소민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프레디가 웃는 것 같았다. 고개를 저으며,
"웃기는 소리. 금고에 든 거, 현금이야. 정확히 얼마인지는 나도 몰라. 주인인 뫼르소는 죽임을 당했고."
그러다 애밀리를 노려본다.
"애밀리 같은 인간이 꿀꺽하도록 둘 수 없지! 절대로!"
하지만, 애밀리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프레디가 어떤 폭언을 내뿜던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급기야 저벅저벅, 금고 앞으로 걸어가 막아섰다. 나를 죽이고 가라는 식으로.
프레디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것이 보였다.
프레디: 뭘 어쩌자는 거지?
애밀리: 어쩌긴.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려야지. 외지에서 온 사기꾼 놈에게 이 돈을 떼어 먹히는 통에 마을사람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데.
프레디: 그러지 마쇼. 그 돈. 뫼르소 돈, 그 돈이 있어야, 그래야 도망간 놈을 잡지. 뫼르소를 죽였다는 그 포르투갈놈.
애밀리: 정말 못 들어주겠군. 그래. 네놈도 돈이 절실해졌겠지. 리프트에서 괜히 나빌을 죽이는 바람에.
프레디: 안 죽였다니까! 나빌, 그 알코올중독자, 그놈이 먼저 나한테 뛰어들었어! 나를 뫼르소의 스토커로 단정 짓고서는!
애밀리: 뭐라 떠들던 핑계에 불과해. 치즈공장에서 매니저를 두들겨 팼을 때와 똑같아.
프레디: 그 매니저 놈이 얼마나 악질인지, 당신은 모르나? 발효 가스 문제로 야간근무자가 실신했는데도, 덮으려던 인간이야.
애밀리: 그래서 숙성실 전원장치를 손댔겠지. 치즈를 전량 폐기하도록.
프레디: 닥쳐!
애밀리: 이래서 외지인한테 일자리를 주면 안 되는 거야.
프레디: 난 거의 평생을 이 동네에서 살았어. 그런데도 아직 외지인이라고?
그때였다.
쥴리가 움직였다.
누구도 예상 못한 각도에서, 아주 갑작스럽게.
기습이었다.
뒤따르는, 또 한 발의 총성.
'미친 게 분명해! 다들 미쳐버린 거야!'
바람이 외쳐주는 것 같았다. 그녀를 대신해서.
바닥으로 피가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 / /
안돼. 정신 좀 차려봐, 쥴리.
그런 멀쩡한 말 같은 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쥴리의 눈이 벌써 반쯤 감긴 걸 보고, '보통 어떻게 되지? 영화에서 이 정도 총상을 입으면?' 하면서 고개만 젓는 소민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드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이미 눈앞이 하얘져버린 뒤였다.
그 상황에서,
"괜찮아요?"
라고, 프레디가 물어보는 것이었다.
쥴리에게 총을 쏜 주제에!!!
...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사냥총이 애밀리 손에 가 있었다.
총에 맞은 쥴리에게 정신이 팔린 프레디에게서 가뿐하게 총을 빼앗고는,
"넌 끝났어!"
하면서 방아쇠를...
딸깍.
딸깍 딸깍.
빈 방아쇠 소리.
총알이 없었다.
소민이 목격한 다음 장면은 애밀리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장면이었다.
프레디가 애밀리를 주먹으로 후려친 모양이었다. 있는 힘껏.
/ / /
소민은 손바닥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지혈을 한답시고 쥴리의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어려니 그랬다.
따듯하구나. 진짜는 달라.
그딴 생각이 몰려들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피가 출렁이는 씬, 피가 넘쳐흐르는 씬, 피가 뿜어 나오는 씬.
별별 분장을 다 해보았으나, 그 가짜피들은 하나도 따듯하지가 않았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프레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해 마쇼, 애밀리. 난, 그놈을 잡으려는 겁니다. 이 돈으로 반드시, 잡아서 복수를 할 겁니다. 그게 내가 사랑했던 뫼르소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애밀리 목소리가 대답했다.
"증언해 주지. 프레디 네놈이 죽인 거라."
"빌어먹을! 마음대로 생각하쇼! 애밀리, 당신이 차별주의자인 건 이미 온 세상이 다 알아!"
소민이 목을 길게 뺀다.
프레디가 바쁘게 움직이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기어이 열어버렸구나. 저 금고.
침낭속에 굴러다니던 그 등산가방에 지금 프레디가 돈다발을 구겨 넣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뒤돌아서는 순간...
쓰러지고 말았다.
'애밀리...'
라는 탄식이 소민의 입가를 맴돈다.
애밀리가 부서진 와인병을 쥔 채 온몸을 떨고 있었고, 바닥에서 프레디의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애밀리가 프레디를 찔러버린 것이었다. 꼼짝도 못 할 정도로 힘껏.
/ / /
애밀리가 혼란에 빠진 기색이 역력했다.
돈다발이 가득 담긴 등산가방을 엉성하게 든 채 왔다 갔다, 헤매고 있었으니까.
깊은 정적 속에서 프레디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당신답군... 정의로운 척... 착한 척... 구역질 났는데... 살인은 당신이 했으면서... 그날... 절벽... K.C."
그제야 말이 튀어나왔다.
소민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K.C. 를 죽이다니?" "프레디가 무슨 말하는 거냐고요!" "대답해요, 애밀리!"
그러나, 제대로 된 대답이 들려올 리 만무했다.
모른다는 외침으로 되돌려주는 애밀리였다.
프레디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소민이 알아들은 건, 기껏해야 '절벽' , 'CCTV', 그 두 개 정도랄까.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가방을 움켜쥐고 나가는 애밀리를 소민이 붙잡는다.
"설명해요! 설명 좀 해보라고요! 프레디가 한 말!"
"몰라! 모른다고!"
"이렇게 도망칠 작정이에요, 애밀리?"
"난 그냥... 난 그날 K.C 가 암벽등반한다고 매달려 있길래... 투자금 얘기만 했을 뿐이라고..."
"그런 얘길 했다고요? 절벽에 매달린 사람한테요?"
"이거 놔! 망할 외지인 같으니라고!"
소민이 몸을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애밀리의 손에 쥐어진 와인병이 한차례, 또 한차례 허공에서 속절없이 휘둘러진다.
소민은 막지 못했다.
넘어지고 말았다.
애밀리가 계단을 쿵쾅쿵쾅 내려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걸 들으며 소민은 앉아있었을 뿐.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