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그런데, 누구 말을 믿어야 하지?

by 슴샥

금고 속 내용물은 확인도 못했다.

뒤에서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쩌렁쩌렁, 이층 전체를 울렸기에.

돌아보는 소민.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프레디.

어둠 한가운데 그가 서있었다. 사냥총을 겨눈 채로.

다섯 발자국? 아니, 겨우 서너 발자국 거리?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만 같았다.


프레디: 금고에서 손 떼. 어서.

쥴리: 별 볼 일 없는 동네 양아치새끼인 줄 알았는데. 협박까지 하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프레디: 전부 뫼르소 돈이야! 그녀가 아버지에게,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나빌한테 착취당하는 게 이골이 나서 작정하고 돈을 숨겨놓은 거라고! 유튜브로 번 돈, 몽땅!

쥴리: ... 개소리


프레디가 입은, 목 늘어난 회색 반팔티 왼쪽 끝단에 피가 한 움큼 묻은 것이 보였다.


소민: 서, 설마, 아드리앵의 피?... 아드리앵은?...

프레디: 아드리앵? 그 머저리 얘길 왜 나한테 물어?

소민: 아까 끌고 갔잖아! 절벽 쪽으로!

프레디: 그 덜떨어진 새낀 또 어디선가 토악질이나 하고 있겠지. '피, 피, 피, ' 외쳐대면서... 잠깐! 금고에서 떨어지란 말, 못 들었어? 그 돈, 뫼르소 돈이라고. 뫼르소가 돈을 숨기고 벽돌을 다시 쌓았어. 그걸 내가 도왔고. 알아듣나?

쥴리: ...

프레디: 난 뫼르소와 연인 사이였다고! 젠장!


철컥. 총을 장전하는 프레디.

구식 사냥총이라 그런가. 소리가 유독 컸다.

뭐라도 해야지 싶어 소민이 나선다. 아무 말이나 떠든다.


소민: 나, 나빌, 그 사람이 그랬어. 금고 속 재산을 몰수해 오란 지시를 받았다고. 변호사한테서. 서류. 아랍어로 적힌 서류. 그걸 내밀었어. 우리한테.

프레디: 그놈도 영 바보는 아닌가 보군.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꾸며낼 줄도 알고. 아마 주의를 분산시킬 작전이었겠지. 사람들이 어리바리하는 동안 금고에서 나온 돈을 들고 튀면 끝이니까.

쥴리: ...

프레디: 다시 말하지만, 우린 연인 사이였어. 내가 뫼르소에게 알려줬지. 혹시라도 나빌이 여기 찾아와 행패를 부리다 숨겨둔 금고의 존재라도 발견한다면, 그땐 딱 잡아떼라고. 그래야 덜 얻어맞거든. 딸이 자기 몰래 금고에 돈을 숨긴 걸 알게 된 순간, 주먹부터 날릴 성격이니까. 뫼르소는, 불쌍한 그녀는, 아마 나빌에게 울면서 말했을 거야. '저 금고 안의 돈, 난 정말 모르는 돈이에요, 죽은 리조트 주인이 은닉해 둔 재산이겠죠'. 하면서.

소민: 모, 못 믿어. 나빌을 죽인 장본인이 떠드는 소릴 어떻게 믿겠어? 나빌이 리프트에서 죽은 거, 저 사람 짓이야. 저 총! 나빌에게서 빼앗은 저 총으로...

프레디: 뭔 헛소리야? 난 쏘지 않았어!

소민: 하, 하지만...


반박하려 했으나, 말이 나가지 않았다.

목격한 건 나빌이 죽어있는 장면이었을 뿐. 과정 전체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그러고도 남지. 사람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않을 위인이지. 프레디 너는."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랑카랑, 어둠을 울리면서.

...

애밀리였다.



/ / /



"또 당신이야?"


그렇게 소리치는 프레디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총구가 이번에는 애밀리에게로 향한다.


애밀리: 네놈이 감히 누구한테 총을 겨눠? 쏴 보시지 어디?

프레디: 이 빌어먹을 동네... 당신은 항상 이딴 식이지... 처음부터 그랬어... 처음부터 나한테만...

쥴리: 피해자인 척하지 마. 지금 사람들한테 총을 겨누고 있는 건 너야.

프레디: 닥쳐!

쥴리:...

프레디: 아무도 몰라! 모른다고! 내가 이 동네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어떤 일들을 겪으면서 살았는지!


프레디의 손등에 핏줄이 솟아나는 장면이 소민의 눈에 명확히 보였다.

총구가 떨리는 장면 또한.

반면, 애밀리는 아랑곳 않는다. 초록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릴 뿐.


애밀리: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리는군. 어젯밤 나빌이 그랬지? 딸한테 스토커가 있다고. 그래서 오해를 한 모양인데. 흠... 그 사진 말이야. 아이패드 배경화면 사진. 나도 당황했거든. 그 사진 보자마자, '아드리앵이 스토커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찬찬히 되짚어보니 아니었어. 그깟 사진 한 장이 뭘 증명할 수 있겠어? 안 그런가? 사진 하나 가지고 어떻게 사람을 스토커로 단정해?

쥴리: 미치겠네. 끝까지 아드리앵 편이나 들고.

애밀리: 편을 들다니? 잘 생각해 봐, 쥴리.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지껄일 사람이 누구일지를.

프레디: 그게 나요? 당신이 말하는 거짓말쟁이?

애밀리: 어쩌면 집착 같은 거겠지. 뫼르소를 스토킹해온 스토커로써의.


프레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티날 정도로 몹시.


프레디: 모르나 본데. 뫼르소와 난...

애밀리: 연인? 연인이라고 했던가? 하하!

프레디: 웃어?

애밀리: 흠... 연인이라...


위험한 상황임을 감지한 소민. 물러난다. 자기도 모르게.

프레디가 고개를 젓는가 싶더니, 숨을 크게 들이킨다. 말을 마구 쏟아낸다. 떨리는 목소리로.


프레디: 당신들, 어젯밤에 내가 태워다 줬지? 그 뒤로 나 역시 고립됐어. 집에는 가지도 못하고, 산중턱에서 몇 시간이나.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불쌍한 뫼르소가 죽었다는 소식을... 아아...

당신 같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해. 내 기분이 어땠는지. 난 정말이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고! 리조트로 올라갈 방법이 없다는 걸 안 다음부터는 더욱이나...

젠장! 그 빌어먹을 동네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스키리프트, 다 망가져 너덜거리는 그 리프트가 떠오르는 바람에. 거긴 이미 사람들이 있었다고! 알아들어? 내가 아랫마을에 갔을 땐, 이미 사람들, 경찰도 아닌 평범한 동네 사람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찰 놈들에게 여기저기서 연락받은 아랫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놈. 그 악마 같은 놈. 술냄새 지독하게 풍기면서 욕지거리나 해대는...

애밀리: 나빌을 얘기하는 구로구만.

프레디: 그놈이 아랫동네에서도 난동을 부렸다고! 총을 들이대면서!


계속되는 프레디의 욕설.

나빌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한.

프레디가 쏘아본다.


프레디: 당신! 이 핏자국을 아드리앵 것이라 오해했지?

소민: 그, 그건...

프레디: 이건 내 피야! 내가 나빌한테 당한 흔적이라고! 난 거기서 도망쳐야 했어!

애밀리: 도망? 네놈이 도망을 쳤다고?

프레디: 나빌이 워낙 폭력적으로 나왔으니까. 당신들은 나빌을 몰라. 그놈 그거, 어쩌면 뫼르소를 어떻게 했을지도 몰라. 그런 놈이야. 딸을 죽이고도 충분히 남지. 그래서 도망쳤어. 리프트에 무작정 올라타고는. 그놈이 따라 탈 줄은 상상도 못 하고선...

애밀리: 도대체 어떡하다 죽인거지?

프레디: 죽이다니? 나빌이 아래로 떨어졌다고!!! 사고로!!!

애밀리: 사고?... 사고라... 음...


침묵이 찾아왔다.

소민의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단어들이 뒤엉킨다. 리프트, 고성, 총성, 피...

잠시 후 프레디가 다시 입을 연다. 어찌 된 일인지 톤이 급격히 가라앉아 있었다.


프레디: 됐어. 그냥 믿고 싶은 대로 믿어. 어치피 부검하면 밝혀질 걸 가지고는. 난 증명할 게 많아. 당장이라도 전화해 보라고. 아랫마을, 리프트 관리하는 사람들, 그들이 증언해 주겠지. 나빌이 미쳐서 날뛰는 장면, 총으로 사람들 위협하는 장면, 나한테 시비 거는 장면, 그들 모두 목격했으니까.

애밀리: 증명? 그 단어 마음에 드는군. 증명, 증명, 떠들지만 말고 증명해 봐. 저 돈이 죽은 뫼르소 돈이라는 거.

프레디: 아...

애밀리: 봤지? 이놈이 아무 소리 못 하는 거. 금고 속 저 돈, 틀림없이 마을 돈이야. 그때 떼어 먹힌 투자금. 그 일부를 K.C. 그 사기꾼 놈이 횡령한 분량.

쥴리: 횡령이라뇨? 말 좀 가려서 하시죠.

애밀리: 약혼자랍시고 편드나 보네? 죽은 K.C. 가 사업 자금을 총괄한 건 쥴리도 알고 있잖아? 총액을 계산해 봤을 때 돈이 빈다는 사실도.

쥴리: 억지 부리지 마세요. 이미 다 끝난 일이잖아요. 지방의회 로비자금으로 썼다고, K.C. 살아있을 때부터 장부를 공개한 걸 가지고는.

프레디: 순진한 척은. 진짜로 믿나? 그딴 장부?

쥴리: 뭐라는 거야? 이 양아치 새끼가...

프레디: 조금은 솔직해져 봐. 이렇게 금고를 열어보려는 거, 죽은 약혼자를 의심해서잖아. 아니야?

쥴리: 더는 못 들어주겠네... 잘 들어. 이 안에 든 건, K.C. 가 물려받을 재산이야. 아이저너 베히터. 그 가문 소유의.

프레디: 무슨 헛소리를! 뫼르소 돈을 가지고서!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누가 더 크게 말하느냐, 그것에 따라 진실이 결정나는 것처럼들 굴었다.

소민이 귀를 막는다.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면서 외친다. 경찰이 해결하게 내버려 두자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 / /


소용없었다.

소민의 외침 따위,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도리어,


"생각났어. 증거로 쓸만한 거. 사진 보이지? 여기, 뫼르소. 돈자루 들고 있는."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는 프레디였다. 커다란 사냥총을 어깨에 맨,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소민: 장소가 이곳 같긴 한데... 벽의 패턴이랑, 코너의 그림... 안 보여요... 너무 희미해...

애밀리: 사진? 그깟게 뭘 증명해 주는데?

프레디: 조용히 하라고! 증거 하나 없는 건 당신이잖아!


그러자 애밀리가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에서 종이를 한주먹 꺼낸다.

숫자가 빼곡하게 적힌 메모지.

급하게 휘갈겨 적은 숫자에다, 구겨진 종이, 번진 잉크하며.

아까 일층에서 통화하면서 끄적인 종이 같았다.


"내것이 더 증거에 가깝겠지. 명확하잖아? 누가 얼마를 투자했고, 언제 K.C. 그놈이 가져갔고, 얼마가 비었는지. 이건 고칠 수도 없어. 마을 사람들이 산증인이니까."


애밀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쥴리가 나선다.

패딩의 지퍼를 내리면서 목부분에서 뭔가를 꺼낸다.

목걸이. 끝에 달랑거리는 펜던트.

거기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금고의 앰블렘과 같은.


"보이세요? 이 문양. 아이저너 베히터. 그 가문의 문양이라고요. 이 목걸이는 약혼할 때 내가 K.C. 에게서 받은 거고."


하. 지. 만.

...

프레디가 한 발 앞으로 나가며 외친다. "금고에서 손 떼!"

쥴리가 손으로 가로막는다. "멈춰!"

애밀리가 밀고 들어온다. "내 장부! 이 장부에 다 적어뒀잖아!"


그리고 소민의 한 마디.


"안 돼요, 다들!..."


그녀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총소리가 울렸다.

천장에서 우수수, 먼지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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