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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Sep 09. 2018

체실 비치는 힘을 잃었다

브런치 무비 패스 #02 - 영화 <체실 비치에서>(2017)

 지난주 무비 패스 두 번째 작품인 <체실 비치에서>를 관람하고 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한 바 있다.  



 이번 리뷰는 종전의 것들과 달리 감상평부터 말하고 시작하려 한다. 극장을 나서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체실 비치'의 의미는 뭐지?"


 

 영화는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신혼 부부가 체실 비치 근처로 여행을 온 날부터 시작한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두 사람이지만 창 밖 풍경은 어쩐 일인지 흐린 구름만 가득하다. 아니나 다를까, 로맨틱한 저녁 식사 자리를 원했건만 모든 상황이 좀처럼 도와 주질 않는다. 에드워드(빌리 하울)는 스스로를 책망한다.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은 침착해 지려 애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하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두 사람은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그날 서로에게 이별을 고한다.



 <체실 비치에서>는 두 사람이 이별을 맞이하기 전까지 현재와 과거의 장면들이 번갈아 제시되는 형식을 취한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둘 사이 중요 사건들, 애틋한 감정을 나누는 사소한 신에 이르는 과거 장면이 체실 비치에서의 장면과 교차된다. 예상하건대 감독은 의도적으로 양 시간대의 분위기를 대조시켜 두 사람의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후반부에 이르러 이 교차가 하나의 시간으로 수렴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그 순간 영화가 매력을 잃기 때문이다. 이제껏 시간을 다뤄 온 정성이 모두 무력화된다.



 단순히 서사 전개 방식이 바뀐 것을 아쉬워 하는 게 아니다. 후반부에 매력과 힘이 있었다면 시간의 순차적 흐름이 오히려 일종의 변주처럼 느껴졌을 테다. 뒷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그리워하며 나이 먹는다. 그리고 예상대로 두 사람은 재회한다. 이후 내용 역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하나, 플로렌스에게는 (변화라 하기도 뭐한) 변화가 생긴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체실 비치에서' 모든 걸 시작하고 끝맺길 바랐고, 실제로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공간적 특수성이 무색하리 만큼, 딱 전반부까지만 배경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채 소멸된다. 영화는 체실 비치를 벗어나는 순간 모든 힘을 잃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체실 비치가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는 영화였다.



 2시간 남짓한 이야기는 체실 비치에서의 시간을 마지막으로 회상하며 끝맺는다. 하지만 이 장면도 큰 의미는 없다. 영화는 마치 수미상관의 법칙을 챙기기라도 하려는 듯 급히 해변으로 돌아오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실제 서사가 종결된 장소는 따로 있다는 걸 감독도 관객도 모두 안다. 왜 그곳이 모든 것의 마지막이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체실 비치는 두 사람의 신혼 여행 장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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