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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Nov 20. 2018

소녀는 평범해지고 싶었다

브런치 무비 패스 #05 - 영화 <영주>(2018)

솔직하게 말하자면 잠시 이 영화가 흔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본 직후의 느낌이 그랬다. 짧게 생각한다면 <영주>는 한 소녀를 구석으로 내몰아 슬픔의 정서를 힘껏 끌어내는 영화다.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주>에서 주인공이 필요로 했던 것은 단순한 '사랑과 관심'이 아니다.



영주(김향기)가 필요로 했던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역으로 그녀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다. 영주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없다. 부모님의 이른 죽음, 보호자 신분을 내세운 고모 내외의 지속적 간섭, 문제를 일으키는 동생까지. 매일이 새롭게 견뎌야 하는 나날이다.



이런 하루의 연속은 영주가 상문(유재명)과 향숙(김호정) 부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가장 큰 이유이도 하다. 상문의 차 사고로 부모님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영주는 그들이 '좋은 분들'이라고 누차 말한다. 동생 영인(탕준상)에게 부부의 따뜻한 면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절실한 설득에 가깝다. 영주는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이야말로, 자신이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들처럼 일하고, 밥먹고, 웃을 수 있는 시간.



같은 맥락에서 영화의 연출과 배우 김향기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영주의 내면은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이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 건 <영주>에서 반복 변주해 사용하는 숏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영주의 대사를 빌어 감정 상태를 표현하거나 얼굴을 클로즈업해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영주의 심경이 복잡해질 때 즈음, 쓸쓸한 도시의 풍경을 잡은 와이드 앵글 안에 영주의 전신 혹은 상반신을 중첩시키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때 영주는 다른 사람들 없이 혼자인 채다. 평범한 도시 한 가운데에서 자신이 여느 또래들과 같은 20살 소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영주의 슬픔이 숏을 가득 채운다. 김향기의 연기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김향기의 모든 연기가 찬사를 받을만 하지만, 특히 와이드 숏에서 한눈에 보이는 섬세한 움직임들이야말로 조명되어야 마땅하다.



영주는 결국 알아챈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용문 내외 역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이때 영주가 느끼는 것은 연민이 아닌 동질감이다. 평범해 보이는 그들 역시 결코 평범해질 수 없다. 평범해 보이는 세상에서 나 역시 평범해질 수 없는 것처럼. 이 슬픈 공식을 영주는 얼마나 되뇌였을까.



영주는 관심이 필요한 소녀 가장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지, 좌절할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주의 성장을 논하는 관객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고통 뒤에 성장할 수는 있겠으나,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고통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길의 끝에서 영주가 무엇을 느꼈던 간에 앞으로 나아갈 길에 더 이상 커다란 고통은 없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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